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두 눈 부릅뜨고

가까스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객들은 꾸역꾸역 쉴 새 없이 밀려든다. 접시에 담아온 음식을 한참 정신없이 그러넣다 무심코 건너편 자리로 눈길이 갔다. 모자가 다정스럽게 앉아서 먹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서른 중반쯤 돼 보이는 엄마와 예닐곱 살가량의 남자아이다.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에게 먹이를 물어다 나르듯 엄마는 아이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부지런히 집어 입에다 넣어준다. 연신 "엄마 맛있어. 엄마 맛있어" 하며 납죽납죽 받아먹는 아이의 표정에 행복감이 가득하다. 그 광경에 마음이 끌려 자꾸만 슬쩍슬쩍 곁눈질을 한다.

나란히 놓인 접시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놀랍게도 엄마와 아이의 그릇에 담긴 요리가 어쩜 그리 똑같을 수가 있을까. 소불고기에다 돼지고기 수육, 닭다리 튀김, 훈제 오리고기, 너비아니, 거기다 햄과 소시지까지, 온통 육군 일색이다. 야채라고는 눈 비비고 찾으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완전히 풀밭인 내 접시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고향 동기의 아들 결혼식 잔칫날 찾은 한 예식장 뷔페는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뇌리에 남겼다.

이런 식습관에 길들어 있는 저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오지랖 넓게도, 아이의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불안해진다. 비록 내 아이이지만 동시에 우리 아이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 땅의 대장암 발병률이 가파른 속도로 치솟고 있다. 동양인의 장 길이는 서양인의 그것에 비해 약 30㎝ 정도 더 길다고 한다. 섭취한 음식물이 그만큼 장에 오래 머물면서 독소를 뿜어낼 수밖에 없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우리에게 특히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날 보릿고개 넘기가 태산 넘기보다 힘겨웠던 시절, 우리 세대는 어머니가 산과 들에 나는 풀뿌리 캐고 나무껍질 벗겨 와서 차려 주신 음식을 먹고 자랐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천연의 먹을거리들이 오히려 보약 밥상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엄마의 입은 가족의 건강과 직결된다. 주부들은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음식을 장만하기 쉽고, 그러다 보면 그것이 가족 전체의 식습관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밥상이 아무리 풍성해도 고기 반찬이 놓여 있지 않으면 일쑤 먹을 게 없다고 투정을 부린다. 이 일을 어쩔 것인가. 고운 자식일수록 매 한 번 더 든다고 했다. 그냥 오냐오냐하며 감싸고만 들 것이 아니라, 항시 두 눈 부릅뜨고 아이들을 육식의 유혹으로부터 지켜내어야 하리라. 이것이 오늘의 우리 어머니들이 지녀야 할 진정한 자식 사랑의 자세가 아닐까.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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