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 침몰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엠에스 발모럴호라는 여객선은 타이타닉호의 승객 수와 같은 1천309명의 승객을 태우고 당시 항로인 영국의 사우샘프턴항을 출발, 미국의 뉴욕으로 항해 중이다. 이 배는 침몰 지점에 이르러 잠시 항해를 멈추고 추모식도 연다. 타이타닉호 희생자의 후손 50여 명이 포함된 승객들은 당시의 의상을 입고 당시 메뉴대로 식사한다고 한다.
영국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0일 처녀 항해에 나선 지 4일 만에 빙산과 충돌하고 나서 다음날 침몰, 2천20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1천500여 명이 바다에 빠져 숨지고 705명만 살아남았다. 사상 최악의 여객선 참사였다. 전체 중량 4만 6천328t, 길이 259.08m, 너비 28.19m, 깊이 19.66m의 이 거대한 배는 절대 가라앉지 않을 '불침선'(Unsinkable)으로 불렸으나 예기치 못한 비극을 맞고 말았다.
타이타닉호가 지금껏 거론되는 이유는 인간의 오욕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배를 만들었다는 자부심, 그 자부심이 부른 오만과 방심, 죽음의 순간에 싹트는 사랑과 명예, 가족애,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명정에 태운 신사도 정신 등이 그것이다. 귀족과 평민, 부자와 가난한 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가 되어 위대한 인간애를 빛냈다.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순간,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과 이 배를 설계한 토마스 앤드루스는 승객들의 구조를 돕고 나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 승객들의 동요를 줄이려고 마지막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한 악단장 월러스 하틀리도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이때 구조된 생후 9주의 밀비나 던은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2009년, 97세로 숨졌다. 숭고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귀중한 생명이 이어졌던 것이다.
타이타닉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998년에 선보인 영화 '타이타닉'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최근에는 3D 영화로 다시 출시됐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이 남녀의 사랑을 다룬 데 비해 1950년대에는 가족애를 다룬 타이타닉 소재 영화들이 출시되기도 했다. 무수한 사연과 뒷이야기를 남긴 타이타닉호는 가장 짧은 항해를 기록했지만 가장 오래 기억되는 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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