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총선을 핑계로 세월을 좀 되돌려보자. 1990년대 들어 첫 총선이었던 92년 14대 선거 때 대구의 국회의원 분포는 민자당 8명, 국민당 2명, 무소속 1명이었다. 이때 국민당은 김해석 윤영탁 의원, 무소속은 정호용 의원이다. 13대 선거 때 민자당의 전신(前身)인 민정당이 8석을 모두 휩쓸었던 것에 비교하면 좀 나은 편이었다. 자민련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96년 15대 선거 때는 민자당의 후신(後身)인 신한국당이 전멸하다시피 했다. 강재섭 김석원 의원 2명만이 당선자석에 이름을 올렸고, 자민련 후보가 8명 당선했다. 서훈, 백승홍 의원은 무소속으로 당선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뒤바뀐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권력 핵심에서 멀어졌다는 위기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 16대 선거에서는 11석이 모두 신한국당에서 바뀐 한나라당 후보 몫이 됐다. 한 석이 늘어난 2004년 17대 선거 때도 한나라당은 12석을 모두 차지했다. 그리고 2008년 18대 선거에서는 외형적으로 한나라당 8석, 친박연대 3석, 무소속 1석이었지만, 친박연대의 홍사덕 박종근 조원진 의원과 무소속 이해봉 의원이 선거가 끝난 뒤 모두 한나라당에 입당한 결과를 두고 보면 역시 한나라당 일색이었다.
경북은 더욱 심했다. 16대는 16곳 선거구 모두 한나라당 승리, 17대의 16석 가운데 15곳이 한나라당이고, 신국환 의원이 문경'예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했다. 그리고 18대 때는 한나라당 9석, 친박연대 1석, 무소속 5석이었지만, 선거 뒤 무소속은 몽땅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쯤이면 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최소한 대구'경북에서는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등식은 20년 가깝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사실 올해는 좀 다를 것 같았다. 도시와 농촌이 섞인 경북은 그렇다 하더라도 대구에서는 야당의 바람이 불 것으로 은근히 기대했다. 이번 선거가 올 연말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 성격으로 박근혜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정에 대한 심판 성격이 더 강했다. 또 여러 곳에서 1당 독식 체제는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에 맞춰 지역 언론도 매일 같이 새누리당 몰아주기 불가 여론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야당 바람은 전혀 불지 않았다. 서울의 언론은 아예 대구'경북의 선거에 무관심했다. 선거 당일 온종일 계속한 선거 방송에서도 대구'경북은 완전 열외였다. 이는 일심이체(一心二體)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키재기를 한 광주, 전남, 전북도 비슷했다. 그나마 대구 수성갑의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와 광주 서을의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없었다면, 양 지역의 어떤 곳도 관심을 두고 개표 상황을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이는 경쟁 구도 없이 오랫동안 한 당만을 열렬히 지지한 양 지역이 자초한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 그리고 좋지 않은 예측은 언제나 그대로 들어맞는 법이다. '설마 그렇게까지…'라고 했던 예상에 화답이나 하듯 지역민은 대구 12대 0, 경북 15대 0, 합계 27대 0을 만들었다. 일방적이고 화려한 이 전적이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결과가 나온 이상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이제는 이 터무니없는 사랑을 쏟은 대가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정도라면 영남권 신공항도 만들고, K2 공군기지도 옮기고, 수조 원에 이르는 대구시의 부채도 없애고, 일자리를 팍팍 늘려 청년 실업을 확 줄여달라고 당당히 요구해도 좋을 듯하다. 억지가 아니라 그동안 인물에 관계없이 오로지 한 당만을 맹목적으로 지지한 민심을 생각하면 그리 무리한 기대가 아니다.
이번 결과를 계기로 지역의 유권자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유권자의 덕목이 아니다. 고깔만 씌워 낙하산 공천을 하고도 당당하게 표를 요구한 새누리당이 무릎을 꿇고 매달리며 해야 할 소리다. 말뚝을 꽂아 놓고, 절만 하라는 오만 앞에서 향주일편단심 영유개리여지(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與之,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만 외치고 있으니 이런 어리석은 사랑도 다시 없는 듯하다. 사랑도 적당히 밀고 당겨야 오손도손한 맛이 있고, 마음이 아파도 한 번쯤은 헤어짐을 겪어야 굳고 더 오래간다. 대가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짝사랑은 영원히 짝사랑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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