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 갓 입문한 지인에게 오디오를 추천한 적이 있다. 빠듯한 예산에 맞추느라 애를 먹었지만 나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며칠 후 지인이 식사 대접을 하겠단다. 이유는 오디오가 어찌나 좋은지 연주자들의 숨소리를 느낄 정도였다나. 하지만 지인이 들은 앨범은 원래 숨소리뿐만 아니라 연주 중에 지르는 신음 소리까지 생생하게 녹음된 앨범이다.
지인이 들었던 앨범 '쾰른 콘서트'는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이 1975년 1월, 독일 쾰른에서 가진 실황을 담은 앨범이다. 6살 때 독주회를 열 만큼 천재 소리를 듣던 키스 자렛은 청소년기 재즈에 심취하게 되고 미국 보스턴의 재즈 명문인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에서 교육하는 재즈는 이미 체득한데다 클래식과 현대음악까지 관심을 가졌던 그에게 학교교육은 의미가 없었다.
뉴욕으로 자리를 옮긴 키스 자렛은 음악적 멘토였던 빌 에반스의 연주로 유명한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를 찾는다. 신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던 빌리지 뱅가드에서 연주하던 키스 자렛은 당대 최고의 연주자 아트 블래키를 만나게 되고 아트 블래키의 팀 '재즈 메신저스'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자신의 음악적 성향과 달랐던 당시의 음악은 키스 자렛에게 의미가 없었고 여러 팀을 전전하게 된다. 그러던 중 마일스 데이비스가 자신의 팀에서의 활동을 제안한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는 록음악과 재즈를 융합한 록-퓨전(또는 재즈록)을 시도했고 키스 자렛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새로운 시도를 경험한다. 하지만 클래식과 현대음악 그리고 재즈 피아노 미학에 대한 탐미적 성향의 키스 자렛은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활동도 만족하지 못한다.
1971년 키스 자렛은 평생의 음악적 동지를 만나게 된다.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의 유럽 투어에 참가한 그는 현대음악과 재즈를 중심으로 진지한 음악을 공개하는 ECM 레이블의 맨프레드 아이허를 만나게 되고 피아노 솔로 앨범을 제안받는다. 불과 3시간 만에 녹음된 데뷔앨범 'Facing You'는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던 독일에서 주목받게 되고 이듬해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를 떠나 독일 투어를 시작한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열악했던 ECM 레이블의 사장 맨프레드 아이허는 작은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며 독일의 여러 도시를 다녔다. 두 사람의 여정은 음악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에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이때의 강행군은 이후 키스 자렛을 평생 괴롭히는 만성 통증을 가져오기도 했다. 지인이 스피커에서 들었다는 연주자의 숨소리와 신음은 바로 이 만성통증 때문이었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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