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한국의 뮤지컬

서구보다 짧은 역사…연극 성향 강한 소형뮤지컬 경쟁력

현대의 무대공연 형식 중에서 뮤지컬의 인기를 능가하는 것이 있을까? 멋진 배우와 코러스의 노래와 춤, 화려한 의상, 환상적인 무대와 조명 등 뮤지컬은 작품의 내용이나 주제 이외에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압도하는 매력적인 공연이다. 뮤지컬은 분명히 이 시대의 관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무대공연 형식이 틀림없다. 그런데 뮤지컬은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 그리고 뮤지컬과 연극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이 언제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오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뮤지컬은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는 오페라와는 꽤 멀어져 있다. 오히려 연극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연극의 한 형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는 뮤지컬을 연극의 하위 범주에 포함하는 경우인데 음악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뮤지컬을 오페라나 연극과는 다른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형식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의 역사가 긴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뮤지컬이 뮤지컬 그 자체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뮤지컬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연극의 한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뮤지컬의 주요 제작진이 주로 연극을 제작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작곡이나 음악감독을 제외하고는 주요 제작진이 모두 연극을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뮤지컬을 연극의 또 다른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이다. 기원전에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의 연극이 코러스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뮤지컬을 연극으로 보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므로 뮤지컬을 오페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존재했던 연극의 한 형식이라고 보는 견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뮤지컬의 발생을 두고 벌이는 논란은 뮤지컬의 정체성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분명한 점은 뮤지컬이 이미 연극과 오페라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뮤지컬이 가장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의 인기에 근접해 어느새 그 자리까지 조금씩 위협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영화에 비한다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성을 지닌 라이브공연이라는 무대공연예술의 특징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인기에 근접한 뮤지컬은 모두 우리나라 작품이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규모 오리지널 혹은 라이선스 공연들이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나라의 뮤지컬은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뮤지컬을 연극으로 보든 뮤지컬 그 자체로 보든 관객 입장에서는 달라질 게 별로 없다. 중요한 점은 관객이 오페라, 연극,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뮤지컬에서 느끼고 있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제 문제는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느냐이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관객이 우리의 뮤지컬보다는 외국의 뮤지컬에서 더 큰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뮤지컬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역사가 짧기 때문에 발생한 당연한 결과이다. 뮤지컬 역사가 짧다는 것은 결국 제작시스템이나 제작진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오랜 전통과 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유럽이나 미국의 뮤지컬을 능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우리나라의 뮤지컬은 유럽이나 미국과는 다르게 성장해왔고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뮤지컬에서는 외국과의 대결이 버겁지만 소극장 연극의 장점을 잘 활용해 변화를 꾀한 소형뮤지컬은 한국적 특색을 잘 담아내며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뮤지컬은 연극적 성향이 강하다. 그것이 우리 뮤지컬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특징이 소형뮤지컬의 성공시대를 열었지만 대형뮤지컬에는 적용의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하고 있다. 대형뮤지컬은 연극적인 접근이 아니라 그야말로 뮤지컬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뮤지컬은 아직까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뮤지컬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