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이준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20대가 20대만 대변하면 편협…윗세대와도 당당히 국가대사 논의"

그는 거침이 없었다. 4'11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한 직후인 12일 오후 새누리당 이준석(27) 비상대책위원은 총선 막판 도덕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형태 당선자(경북 포항남'울릉)와 논문표절 문제가 불거진 문대성 당선자(부산 사하갑)에 대한 출당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확보한 원내 과반의석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대선을 염두에 두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선거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된 부분에 대해서는 공천 과정에서 탈락시킨 후보자들과 마찬가지의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당내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비대위원은 국회 과반의석은 당초 새누리당이 목표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대선을 위해서는 과반수를 지키는 것보다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과반의석을 무기로 대선전까지 19대 국회에서 밀어붙이기나 날치기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된 당선자들을 털고 대선에 임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비대위원으로 활동한 지 100여 일 만에 그는 정치적으로 급성장했다. 새누리당 비대위에 합류하기 전까지 정치 경험이라고는 스무 살 무렵인 2004년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실 인턴으로 두 달여 동안 일한 것이 전부인 그는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 된 새누리당의 변화와 활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 점퍼를 벗어 던진 '20대의 맨얼굴'의 그와 만난 것은 그 또래 20대가 많이 가는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커피숍이었다. 그는 '여의도'를 벗어나서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고 마침 그의 회사인 클라세 스튜디오도 강남역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총선에 이어 향후 전개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가도에서 이 비대위원은 지금껏 해 온 비대위원 이상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자신도 지금껏 자신이 해 온 역할에 대해 재미있어하고 있다.

"오늘까지 딱 110일이 지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원 없이 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시작할 때 비대위가 시한부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길어야 넉 달쯤 활동한다고 예상했고 (비대위 활동)초반에 제 학력과 병역 등 쓸데없는 일들이 제기돼서 한 3주 동안 헤매기는 했지만 그거 없었다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이 위원이 비대위에 참여하자 그의 학력과 병역 논란을 제기한 것이다. 검찰 조사결과 강 의원의 의혹 제기는 모두 무혐의로 드러났다. 그러나 강 의원은 이 위원에게 아직까지 사과나 해명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그는 "제가 만약 (앞으로)정치를 하게 된다면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해준 것"이라면서 "더 이상 (학력과 병역문제에 대해) 걸 수 없을 정도로 검찰에서 다 정리해줬기 때문에 오히려 고맙다고 해주고 싶어요"라며 강 의원에게 한 방 날렸다. 그러면서 그는 "강 의원은 펀드로 마련한 선거비용 때문에도 정신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의 정치적 역할은 비대위원으로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국회 인턴을 하면서 이거는 아니다며 정치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17대 국회가 막 원 구성을 하고 나서 3일 만에 인턴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막 싸울 때였는데 만날 농성하고 김밥 실어나르고 했어요. 그 당시에는 (유승민 의원을 보고서 정치를 하는 것이) 너무 멀어보였어요. 20년을 쌓아야 (40대가 돼서 유 의원 같은) 저 정도 위치에 갈 것 같았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는데 그런 스텝을 밟아서 40대에 국회의원을 하라면 안 할 것 같아요."

새누리당 내에서 아직까지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이 적지 않은 것도 그를 잡고 있다. 그는 당내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쪽 외에도 IT와 2030 등 여러 분야에서 직책을 맡고 있다. 새누리당이 비대위 체제를 정상화하고 대선 체제로 전환하게 될 경우에도 이 위원의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자신도 대선 선대위에서 일하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이 대선 체제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사업에 몰두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클라쎄 스튜디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회사다. 비대위에 참여하기 전까지 클라쎄 스튜디오는 3월에 스마트폰 앱을 론칭할 계획이었다. 비대위 때문에 그 계획이 2개월여 미뤄졌다. 비대위 '덕'도 보기도 한다고 그는 솔직하게 밝혔다. 원래 벤처라는 것이 이메일을 보내면 여러 회사에서 연락도 잘 안 하는데 비대위에 참여한 이후에는 웬만하면 다 만나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며 새누리당 비대위원직을 사퇴한 김종인 전 장관이 그에게 빨리 유학을 갔다 오라고 조언을 한 사실도 밝혔다. "지금 (정치가)제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하지 말라고 말리셨어요. 박근혜 비대위원장께서도 저를 참여시킬 때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빨리 유학을 다녀와서 역량을 키우라고 하신 것 같아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그는 "정치적 다양성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이 친박계 일색으로 재편된 것이 대선 구도에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또 이번 총선을 통해 홍사덕 의원 등 중진의원들이 상당수 낙선한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20대의 그에게 박 위원장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궁금했다.

"앞으로도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지난 대선 때(대선후보 경선 때) 제가 단순 유권자로서 TV토론 때 느꼈던 미숙함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당시 '당심은 박근혜였지만 민심은 이명박이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미숙한 부분들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박 위원장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2030세대들을 의식하면서 자신을 존중해주고 있다는 점도 자신이 겪었던 에피소드를 곁들여 소개하기도 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후 당 로고를 새로 제작하고 당가(黨歌)까지 새로 만들어 비대위 회의석상에서 들려주자 '잘됐다'며 호평을 하기 전에 자신한테 "어때요?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라면서 살짝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이 위원이 "쾌활하고 괜찮은 것 같다"고 대답하자 박 위원장이 곧바로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는데 이는 박 위원장이 판단을 유보하고 자신 없어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향후 대선 가도에서도)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투표가 끝난 직후 박 위원장과 함께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그는 스마트폰 인기게임인 '앵그리버드'의 캐릭터 인형을 가지고 나와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이 위원이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앵그리버드에 대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메시지 정치를 한 것에 대해 조롱하고자 하는 뜻이 담긴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는 안 교수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에 대해 "사람들이 (안 교수의)메시지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라면서 "제가 아는 역사 내에서도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리 등이 판단을 유보하고 머뭇거리다가 한 방에 날아갔잖아요"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안 교수 역시 총선에 직접 뛰어들지 않으면서 전직 총리가 거쳐 간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와 민주통합당 최재천 당선자 등 이 위원이 비대위 활동 초반 평소 존경하는 정치인이라고 언급하면서 정체성 논란을 일으킨 부분에 대해서도 물었더니 "다분히 의도적인 발언이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보수 일변도의 당 색깔을 바꾸겠다는 차원에서 노선을 변경하겠다는 노이즈마케팅 차원의 도발이었다는 것이다.

하긴 그는 자신의 이념적 스탠스를 새누리당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굉장히 새누리당스럽다고 할 수 있어요. 이거는 다른 데서는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북한은 강하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외의 것도 대부분 (새누리당과)비슷하게 간다고 볼 수 있고 안 맞는 것도 있긴 해요."

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를 졸업한 괜찮은 '스펙'을 가진 그가 과연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20대를 대표할 수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는 "(20대라고 해서)그 세대의 대변자로만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 10대는 피선거권도 없는데 누가 대변할 것이며 80대는 (80대)국회의원도 없는데 그렇다면 누가 대변하죠?"라며 "야당이 20대 비례대표를 내세워서 20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창구만 있으면 되지 꼭 그 세대의 대표자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은 정당이 그런 정책을 내놓고 대변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대라고 해서 20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30, 40대와 겨뤄서도 당당하게 국가대사를 논의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위원의 부친은 유승민'주성영 의원과 권오을 전 의원 등의 경북고 동기다. 그렇다고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산 적도 없는 서울사람이다.

그는 2007년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무료 과외 봉사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출범시킨 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비대위 체제에서 벗어나 전당대회를 통해 정상화된 후 '어쭙잖은' 위원회를 맡길 경우 도망가고 싶다는 그는 박 위원장에게 운 좋게 픽업된 신데렐라 같은 20대라는 존재에서 우리 정치의 변화를 이끄는 신진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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