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일 중에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심학봉(51'새누리당) 구미갑 당선자는 4'11 총선에 당선되기까지 수많은 인생 역경을 견뎌왔다.
그는 1961년 4월 11일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서 태어났다. 7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 밑에서 형과 동생 삼 형제가 컸다.
혹독한 가난 탓에 먹을 것이 없어 할머니가 동네를 다니며 얻어 온 밥으로 연명했다. 동네 묘사라도 지내는 날이면 과일, 고기, 떡 등을 실컷 먹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친구들이 십시일반 나눠주는 밥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겨울에 집 뒤 비학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슬레이트 지붕이 뜯겨 날아가버린 적도 있었다.
집은 가난했지만 초'중학교를 다니면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고교 진학을 놓고 담인 선생님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포항 지역 명문고에 장학금을 받고 갈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그는 국립구미전자공고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가 구미전자공고에 진학한 것은 뼛속까지 시리도록 가난했던 추억 때문이었다. 구미전자공고는 3학년 학비 전액면제 및 기숙사 생활까지 제공했다.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구미전자공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했다. 이것이 구미와의 첫 연인이었다.
학생 간부였던 심 당선자는 박근혜 선대위원장을 고교 2학년이던 1979년 봄 처음 만났다. 학교에 찾아온 박 위원장을 교문에서 교장실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지난해 연말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 직을 사임하고 구미에 내려오면서 인생 2막을 열게됐다. 정치신인인 그가 3선 현역인 김성조 국회의원을 여론조사에 꺾었다는 것은 파란 그 자체였다. 물론 이공계 출신 가산점 20% 덕분이었지만 여론조사에서 박빙 승부를 펼쳤다는 것은 놀랄만했다.
그러나 김성조 의원이 여론조사 경선에 불복하면서 무소속 출마를 하면서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새누리당 소속 경북도의원과 시의원들이 무더기로 김 의원을 따라 탈당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밖에 그는 예비후보 등록 이후 선거기간 내 다른 후보들로부터 '구미 출신이 아니다', '영포라인 및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의 공격을 받아왔다.
게다가 일부 후보는 구미전자공고 3년을 빼면 구미와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구미갑 선거구를 구미사람 대 포항사람으로 선거 구도를 몰아갔다.
심학봉 당선자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을 지나오며,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올라야만 기적을 이룰 수 있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뤄냈을 때, 신화가 된다는 사실을 늘 가슴에 새겨왔다. 구미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면서 "박 위원장의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고, 42만 구미시민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구미'전병용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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