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건축(Architecture)과 건설(Build)

2013년 5월 완공 예정인 서울시 신청사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랜 기간 심사숙고의 시간과 공을 들인 계획안의 선정 과정, 3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의 투입 등을 보면 신청사의 건축은 단순히 자치단체의 청사라는 의미를 넘어 나라 전체의 새로운 랜드마크 조성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기에 충분하다. 신청사의 설계자인 건축가 유걸(72'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대표'경일대학교 석좌교수) 선생은 "'시민에게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서울광장을 수직으로 신청사 내부까지 연장하는 게 콘셉트였다. '에코플라자'로 불리는 이 공간은 내'외부를 잇는 완충지대이자 냉난방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는 친환경 공간"이라며 건축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유걸 선생은 신청사의 기본설계 이후 실시설계, 감리 등 건축의 모든 과정에서 배제되었다가 골조 공사가 끝나갈 무렵 다소 생소한 '토털 디자인 마스터 플래너(MP)'라는 이름으로 최근에야 다시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투입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국내에선 일정 규모 이상 공공건축물의 경우 설계자가 감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아이를 낳아놓고도 돌보지 못하는 부모 심정이었다. 설계자 이름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하려 했다"고 그는 그때의 심정을 설명했다. 감리의 순기능에는 설계 도면과 시공 상황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시공 감독 기능과 설계 과정의 연장선에서 1대 1 스케일의 가장 분명하고 오차가 없는 과정으로 치수, 색상, 질감 등 건축의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마지막 교정이 이뤄질 수 있는 디자인의 최후 디벨럽(develop)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해프닝들은 건설과 건축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범주로 감독과 감리의 기능을 구분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차원의 오류로부터 기인한다.

건축(architecture)이 창작의 가치를 기반으로 우리의 삶을 시스템화하는 인문학적인 가치로 정립된다면, 건설(build, construction)은 주어진 설계도에 따라 그 형태를 구축하는 구조, 기술 등 공학적인 제작 과정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작가와 출판사의 역할로 구분해 보면 훨씬 명료해진다. 그러나 작가가 참석하지 않은 출판기념회는 상상할 순 없지만, 설계자인 건축가가 참석하지 않은 준공식은 크게 놀랍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고 보면, 이런 정도의 오류는 당연하기까지 하다. 오랜 기간 길들여진 왜곡된 문화 탓에 천정부지의 높은 가격에도 건축가의 이름에는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는 모델하우스에 우리는 너무 둔감하다. 출판사에는 관심이 있지만 작가는 누구든지 상관없다는 식이다. 건축과 건설의 상하위계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의 범위를 분명히 해야 모두가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차원의 논의이니 혹여 누군가의 오해는 불필요하다.

과거 50년 건설이 수많은 기적과 함께 나라를 일으켰다면, 이제 고부가가치의 건축이 미래를 이끌어야 할 시기이다. 각 대학 건축학과의 남녀 성비가 뒤바뀐 지 이미 오래며, 힘으로 밀어붙여 크고 견고하기만 하면 되던 시대도 끝난 지 오래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선진 유럽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건축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 사회의 총체적 역량을 본다. 문화의 우수성을 가장 오랫동안 증언해 주는 것이 건축이며, 몇몇 경제지표보다 우수한 몇몇 건축이 오히려 도시의 경쟁력을 대변하는 시기이다. 부강한 도시보다 살기 좋은 도시가 훨씬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고, 그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건축디자인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해마다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뛰어난 건축가에게 주는 상이며,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인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의 수상자로 올해는 중국인 왕슈(王澍)가 지명되었다. "왕슈의 작업은 지역의 건축적 맥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띠는 시간을 초월하는(timeless) 건축으로 논쟁을 초월한다"는 선정 배경은 많은 부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보다 뒤처져 있다고 생각해 온 중국의 현대건축이 프리츠커상을 먼저 받자 자성과 현실 비판의 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우리 건축계에서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조성되길 바라며, 또한 우리 시민사회가 문화의 중요성을 구호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김홍근/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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