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승자독식·패자독박' 선거판…금배지 꿈 물거품, 남는 건 쪽박인가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선거! 말은 좋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돈이고, 후보를 알리는 것 자체가 모두 비용이다. 선거에 드는 각종 비용을 적은 가상의 돈봉투다.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선거! 말은 좋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돈이고, 후보를 알리는 것 자체가 모두 비용이다. 선거에 드는 각종 비용을 적은 가상의 돈봉투다.

#1. '앞방' 2억원, '뒷방' 1억원…쪽박!

이번 총선에서 대구의 한 지역구 A후보는 아파트 한 채(시가 3억원)를 날렸다. 소속 정당이 없는데다 득표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해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 법정 선거비용은 '기본 1억원+인구수×200원+읍'면'동 수×200만원'. 대략 산정하면 2억원 남짓. 속칭 '앞방'으로 드는 공식적인 돈이다. 지역에 따라 법정 선거비용이 2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구도 있고, 2억원을 상회하는 곳도 있다.

A후보는 '앞방' 외에 '뒷방' 돈도 걱정이다. 공식적으로 든 돈은 어쩔 수 없이 날렸지만 각종 인터넷 홍보비에다 선거기획사에 줘야 할 돈이 남아 있다. 집을 담보로 잡히고 은행에서 마이너스통장까지 만들어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비용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A후보의 대략의 상황을 넌지시 알려준 선거캠프 관계자는 "법정 선거비용 2억원의 내역을 살펴보면 선거운동원 및 선거사무원 관계자 인건비가 40% 정도이며, 선거 홍보물(벽보'현수막'명함 등) 비용이 40%, 나머지 인터넷 홍보 및 선거기획사 비용 15%, 거리 연설용 차량 대여 등 기타비용 5%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2. 50% 보전, 1억3천만원만 날려

경북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B후보는 1억3천만원을 날렸다. 그나마 10% 이상 득표한 것이 다행스런 일이었다. 법정 선거비용의 100%를 보전받을 수 있는 15%를 넘지 못해 다소 아쉽지만 한자릿수 득표율에 그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B후보는 당초부터 당선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에 올인(all-in)하지 못했다. 법정 선거비용의 3분의 2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썼다. 법정 선거비용보다 적은 1억6천만원을 썼지만 8천만원은 돌려받게 됐다. 그외 소소하게 쓰인 4천∼5천만원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자칫 털어놓았다가는 선관위 조사를 받고,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선거법 위반으로 법적 처벌까지 받을 수도 있다.

B후보의 회계 담당자는 "최근에는 선거법이 많이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법정 선거비용을 크게 웃도는 돈을 몰래 쓸 수도 없다. 고작해야 조금 더 쓰는 정도이다"며 "하지만 박빙일 경우나 농촌지역의 경우 선거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초과해 드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털어놨다.

'승자독식, 패자독박'(Winner takes all, loser lost all).

선거 역시 승부이기에 이겨야 한다. 이기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 50.1%대 49.9%로 이겨도 승자는 명예는 물론 자금 문제까지 어느 정도 해결된다. 반면 49.9%의 지지를 얻어내도 지면 와신상담(臥薪嘗膽), 즉 4년간 섶에 누워 쓸개를 씹어야 한다. 위법 사유가 없는 한 이기기 위한 선거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번 19대 총선에서 금배지의 꿈이 물거품된 탈락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각설이처럼 쪽박을 차고, 실제 손가락을 빨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크게 경제적 타격을 받지 않고, 선거가 없던 때처럼 살면서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그 실체적 진실을 파고드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취재환경 속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와 후보자 보좌관 및 회계 책임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낙선자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 타격을 받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취재한 대로라면 '누가 과연 가정경제를 볼모로 삼아 권력욕의 화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두 사례는 총선 탈락자의 평균적인 사례라고 보면 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법정 선거비용의 3, 4배를 써가며 돈 선거를 하는 예가 많았지만 새로운 정치자금법이 마련된 이후로는 대체로 법정 선거비용을 크게 넘지 않는 범위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 특히 당선자는 당에서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본인이 쓴 돈을 거의 보전받을 수 있게 된다. 돈 선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경제적 타격 없이 금배지를 달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선거비용으로 인한 당선무효형은 법정 선거비용의 200분의 1 이상 초과할 경우와, 선거 사무장이나 회계 책임자가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게 되는 경우이다. 이 때문에 총선 후보자는 법정 선거비용 한계에 다소 여유를 두고 지출하는 것이 선거 이후 돌발변수(초과 비용)가 발생해도 당선무효형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대구지역 한 선관위 관계자는 이런 조언도 해줬다. 야권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와 맞붙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부산의 20대 여성 정치인 손수조 후보의 '선거비용 3천만원 뽀개기'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선거운동원 인건비, 선거홍보물 비용 등은 아무리 적게 써도 1억원은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선거운동원은 선거운동 기간 13일 동안 하루 7만원(일비 2만원+식비 2만원+수당 3만원)씩 91만원을 받아간다. 이런 선거운동원은 대체로 후보당 100명 정도. 그렇다면 선거운동원 비용만 해도 9천100만원이 든다. 또 선거 사무원은 수당이 5만원이기 때문에 하루 9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이 밖에도 후보자들은 선거 기획사 비용과 인터넷 홍보비 및 홈페이지 개설 등에도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이 비용은 실제 법정 선거비용에 모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거 후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탓에 선거 후 잠적하는 비양심적인 후보들도 더러 있다.

총선이 아닌 대선은 '인구수×950원'으로 수백억원의 천문학적 선거비용이 든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간신히 15%를 넘겨 모든 선거비용을 보전받았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지인들의 경제적 파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허점도 있다. 선관위 및 검찰 관계자도 인정하는 정치자금법의 맹점이다. 바로 선거법 제115조인 제3자의 기부행위이다. 선관위에서 제115조 위반으로 고발장을 접수하면 검찰은 "당선자가 직접 기부한 제114조가 아니면 제3자의 기부행위의 위법성을 밝히기가 참 힘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후보와 직접 관계가 없는 자발적 동조자가 많을수록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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