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마음의 책] 고려 우탁이 도끼 들고 왕을 찾아 간 사연은?

아니되옵니다/이동식 지음/해피스토리 펴냄

회사나 기관,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용기 있게 직언(直言)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 최고 책임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고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는 아첨하는 사람들이 들끓는 반면 헐뜯는 뒷이야기도 무성해진다. 물론 이 뒷이야기 속에는 얼핏 객관적인 비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하는 사람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교묘하게 숨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회사는 망해가고, 공공기관은 그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국가경영은 오히려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조차 이러한데, 그 옛날 절대왕조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왕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고 가로막다가 목숨을 잃은 신하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머리를 조아리고 침묵을 지키거나 때로는 입속의 혀처럼 왕에게 아첨과 동의를 해야만 자신의 자리와 이익이 보존되는 상황에서 "전하, 아니되옵니다!"로 시작하여 왕의 면전에서 직간으로 목숨을 내건 사람들이 있었다. 더욱이 이들은 살아남아 역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됐다.

아마도 독단과 패륜을 일삼던 제왕들조차 비록 귀에는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직간(直諫)을 서슴지 않는 이들의 진정성과 순수성만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역동서원에 보존되어 있는 역동선생 우탁의 지부상소(持斧上疏:도끼를 들고 가서 왕에게 드리는 상소) 일화는 극단적 사례에 속한다.

"1308년 막 즉위한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의 후궁이었던 숙창원비와 눈이 맞아 자주 들르게 된다. 유교의 윤리로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소문을 들은 우탁은 상복인 흰옷을 입고 그 위에 거적을 매고 도끼를 든 채로 대궐로 들어가 상소문을 올렸다. '내 말이 틀리면 도끼로 내 머리를 쳐달라'는 뜻이다."

그 후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예상대로 왕의 곁에 있던 신하는 왕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상소문을 펴고도 감히 읽지를 못했다. 그러자 우탁은 호통을 치며 "경은 왕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로서 그릇된 점을 바로 잡지 못하고 악으로 인도하여 지금에 이르니 경이 그 죄를 아느냐"고 통렬하게 꾸짖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신하들은 놀라 벌벌 떨었지만, 왕은 부끄러워하며 우탁의 상소를 받아들였다. 우탁과 같은 충신을 둔 충선왕이 복이 많은지, 아니면 비록 패륜을 저질렀지만 부끄러움을 알았던 왕을 모신 우탁이 복이 많은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때 충선왕이 우탁의 직간을 외면했다면 그는 역사상 가장 실패한 왕 중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은 선거의 해를 맞아 80인에 달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진정한 권력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를 준다. 396쪽, 1만7천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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