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동행 /박일만

헐레벌떡,

전동차에 오른 그녀가 거칠다

귓전을 덥히는 숨소리

흔들리며 휘청이며 쏟아낸다

들척한 온기가 내 몸을 휘감는다

전신에 흡수되는

연신 뿜어대는 아찔한 향내와

요동치는 심장이 내 몸과 섞인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혼과 혼

전생에 스쳤던 인연으로 겹친다

누천년을 그리워하던 끝에 한몸 되는,

숨소리 잠잠해질 때까지

영원이 순간을 끌어안는 잠깐 사이

그녀와 내가 억만년의 지하세계에서

화석으로 살아나는

이 기막힌 동행.

사소한 일상에 담겨 있는 삶의 의미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박일만 시인의 작품입니다. 버스나 전동차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경험이 시인의 눈을 통해 새롭게 태어납니다.

출발 직전의 차를 타기 위해 뛰어온 어느 여자의 거친 숨소리에 시인은 혼자서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네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이 여인과의 만남이 우연하고도 단순한 것이 아니라 누천년의 인연으로 맺어진 '기막힌 동행'이라는 겁니다.

어떤 순간에서 그 뒤에 놓인 영원을 읽는 이런 시선은 우리의 삶을 더 깊고도 입체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 순간 우리의 모든 것들은 수많은 의미로 가득 차게 되지요. 세상의 모든 풍경이 누천년의 인연에서 흘러나온 실마리일 테니까요.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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