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은 봄을 맞아 세 개의 기획전을 선보인다. 대구미술관의 전체 공간을 소통시켜주는 어미홀에는 심문섭의 '섬으로'전이 펼쳐지고, 대구 근대미술을 조명하는 '11인의 인물화'전은 4, 5전시실에서 열린다. 프로젝트룸에는 '디아티스트'전을 통해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1) 젊은 작가들의 시대 고민
◆프로젝트룸-디아티스트
김수자의 영상이 가득 채우고 있던 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이 이번에는 대구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진다.
대구미술관은 '프로젝트룸-디아티스트'를 열고 동시대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감성을 보여주는 동시대 미술을 소개한다. 김미련, 김승현, 김희선, 박경아, 송영욱, 임창민, 전리해, 허양구, 한무창 등이 참가한다.
김미련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이동과 정착에 관해 이야기한다. 독일과 한국이라는 다른 공간에서 스캔한 식물의 이미지가 혼성되어 있는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의 혼성적인 삶을 말한다. 김승현은 이미지를 텍스트에 연결시켜 둘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집' '거실' '수영장'을 소유하고 있는지 관객들에게 물으면서 불편하게 만든다.
영상설치작가 김희선은 '해우소 가는 길'을 만들었다.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만으로 조형적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바람소리,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 사람 숨소리 등 일상에서 채집한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고, 해우소를 만든다. 관람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 삶과 예술이 조우하는 풍경을 만든다.
작가의 내적 불안함을 드러내는 정서의 기록을 보여주는 박경아는 숲 연작을 전시한다. 작품 속 창문은 모두 닫혀 있고, 창 밖 풍경은 흐릿하다. 어둡고 무거운 숲의 이미지와 얇은 커튼이 바람에 살짝 날리는 순간을 통해 작가의 내면을 드러낸다.
송영욱은 자신의 기억 혹은 경험과 관련된 사물을 한지로 캐스팅하고, 그 결과물을 공간에 재구성한다. 또 '총'을 전시공간에 끌어들여, 권력과 폭력, 삶과 죽음, 친구와 적 등 극단적인 포지션이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하게 알려준다.
임창민은 영원하지 않은 신체의 일부로 삶의 한 속성을 이야기한다. 발바닥이 움직이는 영상을 통해 인간 삶의 생생한 흔적을 보여준다. 결국 사라지게 되는 흔적 말이다. 또 손바닥을 복사한 이미지를 또다시 복사하는 과정을 1천 번 재복사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남는 흔적은 손바닥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아이디어나 새로움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이야기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동네의 낡은 벽처럼, 오래된 흔적을 찾아나서는 전리해는 낡고 닳아있는 구조물, 거주지, 골목의 담 등의 공간에 작가가 직접 제작한 종이 작업을 함께 배치한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메타포로서 물이라는 물질을 통해 시간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예쁘고 화려한 인물의 공허한 표정으로 주목받아온 허양구는 정신적인 것이 사라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 만화적인 구도, 의도적으로 왜곡된 색채, 과장된 감정,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표면 질감은 불협화음을 담고 있다. 작가는 제3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상업 잡지로 대변되는 미디어 권력과 사회문화적으로 억압하는 기제에 대해 반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무창은 일명 '빡빡이'라고 불리는 작업을 내놓는다. 유학시절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종이 위에 단어를 빽빽하게 적고 외워질 때까지 줄을 치고 원을 그리는 반복적인 행위가 담겨 있다. 거대한 종이는 연관없는 무수한 이야기가 담긴 낯선 풍경이다. 이 낯섦은 예술의 가능성과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9월 9일까지. 053)790-3030.
(2) 독자적 탄생한 대구 인물화
◆4·5전시실- 11인의 인물화
대구미술관은 '11인의 인물화'전을 4, 5전시실에서 9월 9일까지 연다.
대구미술관은 대구근대미술을 조명하는 전시로 한국 근대미술사 속에서 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한 서양화가들의 인물화를 모아 전시한다.
대구는 독특하게도 독자적으로 서양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유은경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의 근대 작품들, 11인이 그린 다양한 인물화를 통해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 근대라는 시기가 주는 독특한 분위기의 시대상을 읽어보고 그들의 삶과 작품 의미를 재해석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자화상이 주를 이룬다. 자화상은 작가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담고 있어 인물의 내면과 시대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서동진(1900~1970)은 1930년대 대구근대화단의 수채화 전통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팔레트 속의 자화상'은 나무 팔레트 안쪽에 자신의 미소 띤 얼굴을 그려 그의 재치와 진취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서동진과 함께 1920, 30년대 대구 화단을 이끌었던 박명조(1906~1969)는 지역 최초로 조선미전에 입선한 작가다. 중절모를 쓴 자화상을 통해 결연한 성격과 그 시기 화가로서 새로운 실험정신과 자부심을 살펴볼 수 있다.
주경(1905~1979)의 야수파와 입체파, 표현주의, 추상 등 20세기 신경향의 작품들을 보여주는 연대별 자화상이 전시된다. 특히 자연 본원의 실체를 탐구하고자 한 시도가 돋보인다. 화가들의 독자적 화풍이 나타나기 시작한 1930년대를 거친 서진달(1908~1947)의 자화상과 누드화 한 점이 전시된다.
장석수(1921~1976)는 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인물화를 보여준다. 자신의 내적 심정을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그려내고 그의 자화상에서는 시대에 대한 불안과 인간 존재 자체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서석규(1924~2007)의 자화상 3점이 소개되는데, 작가의 내면과 함께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최화수(1901~?)의 1930년대 '바느질하는 여인', 김용조(1916~1944)의 '창주 이응창 초상'은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이인성(1912~1950)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이 전시된다. 부인을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던 신여성인 부인을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황술조(1904~1939)는 '소년상' '자화상' 등을 통해 서양의 모더니즘과 우리의 수묵화 기법을 융합하고자 했다. 손일봉(1907~1985)이 그린 다양한 장르의 가족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3) 통영 앞바다 생명력 형상화
◆어미홀-심문섭 '섬으로'전
대구미술관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어미홀에 심문섭의 작품이 설치된다.
심문섭은 한국적 감수성을 지닌 끝없는 도전 정신의 작가로, 다양한 장르의 매체적 실험을 꾸준히 해왔다. 파리, 베니스, 도쿄 등 국제 비엔날레에 다수 참가하는 등 국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해왔다.
작가는 작가적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서 최대한의 물질적 잠재성을 드러내며, 하나의 완성된 조각으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장소와 상황, 각 작품들 간의 관계, 그리고 관객이 전시를 보는 행위 등을 통해 완성되는 상호 관계성의 산물로 이해하고 있다. 그의 작업 세계에는 늘 '관계'와 '상황'이 매우 중요한 의미로 작용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섬으로'전을 선보인다. 자연과 더불어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무의식에 자리하며 창작의 모체가 되었던 고향의 바다를 콘크리트 전시장에 형상화한다.
어미홀의 5m 높이 상공에는 새장과 같이 얼기설기 엮인 검은색의 긴 원통들이 빛을 안고 떠있다. 이들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허공을 가로지른다. 바닥에는 정사각형의 조형물이 불규칙하게 일렬로 늘어서 있다. 작품 사이에 오가는 빛과 바람은 힘과 에너지의 변동, 순환하는 자연을 느끼게 한다.
대구미술관 황성림 학예연구사는 "심문섭은 빛, 바람, 물, 공기, 일렁임의 향연으로 어미홀을 물들이며 바다가 갖는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이미지를 아련히 전한다"면서 "작가가 은유하는 섬은 작가의 기억 속 섬일 수도, 조금 더 근원적인 자연일수도, 미지의 세계를 뜻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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