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古宅은 살아있다] <16> 영천 별별미술마을 고택들

수백년 잠 깨는 선조들의 삶 터 현대미술을 만나 걸작이 되다

귀애고택(맨 왼쪽) 오른편 우목산 자락에 위치한 귀애정. 조선 후기 공조참의를 지낸 조극승(1803∼1877)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자로, 연못 속 육각정이 일품이다. 담장이 없어 주변 산과 들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태형기자
귀애고택(맨 왼쪽) 오른편 우목산 자락에 위치한 귀애정. 조선 후기 공조참의를 지낸 조극승(1803∼1877)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정자로, 연못 속 육각정이 일품이다. 담장이 없어 주변 산과 들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태형기자
영천별별미술마을 고택 위치도.
영천별별미술마을 고택 위치도.
풍영정은 조선 현종 때 학자인 권응도의 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32년 건립한 정자로, 1969년 중건됐다.
풍영정은 조선 현종 때 학자인 권응도의 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32년 건립한 정자로, 1969년 중건됐다.
2011 마을미술 행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귀애고택 앞에서 보현산 천문대 쪽 하늘을 보며 별을 따는 소년과 강아지를 표현한
2011 마을미술 행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귀애고택 앞에서 보현산 천문대 쪽 하늘을 보며 별을 따는 소년과 강아지를 표현한 '저 하늘 별을 찾아' 작품.

고택이 미술과 만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11 마을미술 행복프로젝트 사업'으로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와 화산1'2리, 화남면 귀호리 일대에 조성된 '영천별별미술마을'에는 설치, 회화, 조각 등 예술작품과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고택들이 어울려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현대미술과 고대미술의 조화로 한적한 시골마을 전체가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미술마을에는 안동 권씨, 창녕 조씨, 영천 이씨 등의 문중 정자, 재실, 서원, 종택을 비롯한 고택이 20여 채에 이른다. 마을 곳곳에 숨겨진 예술작품을 찾아가다 보면 고택이 보이고 고택을 감상하다 보면 예술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들의 작품성과 옛 사람들의 멋과 풍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꼽혀 도시인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모선재 가는 길, 복사꽃 만발

모선재(慕先齋)는 미술마을의 다섯 갈래 행복길 중 도화원길 안쪽의 모산골짜기에 있다. 미술마을 어귀의 신몽유도원도를 상징하는 '메신저', 도화원길 안내판, 오른쪽 들판의 느티나무 아래 둥근 의자, 모선재 앞 자전거 거치대, 모산안못에 뜬 별 등도 모두 예술작품이다.

모선재는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 광주 목사 등을 지낸 안동 권씨 신녕입향조 구의헌(九宜軒) 권열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823년에 건립한 재사로 1972년 중건됐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주위에 방형의 벽돌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 3칸 규모의 산형대문, 왼쪽에 일각문을 각각 세웠다.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2칸, 오른쪽에 온돌방 1칸이 있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구의헌은 1496년 연산군의 난정에 항소를 한 뒤 광주목사를 그만두고 안동에서 신녕 추곡리(현 가상리)로 옮겨와 은거하면서 학문에 심취했다. 가훈으로 효도, 충성, 공경, 신의, 인, 의, 예, 지, 산림경영 등 '구의절목'(九宜節目)을 만들어 자손들을 가르쳤다. 특히 산림경영 부문에서 '산림으로 퇴거하여 집사람과 함께 밭을 갈고 길쌈을 부지런히 하여 가업을 잃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해 청빈한 생활을 중요시했다. 모선재 뒤뜰에는 요즘도 대나무숲이 남아 있어 구의헌의 강직함과 절개를 느낄 수 있다.

구의헌 후손들은 5월 초 모선재에 모여 화전놀이로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고 한다. 음력 10월 4일에는 문중 어른들이 모선재에 모여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등을 뽑은 뒤 묘사를 지낸다고 한다.

모선재 옆 관리사는 방 4칸, 마루방, 부엌 등 정면 6칸으로 구성된 맞배집으로 허옇게 이끼 낀 기와에서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올해부터 방의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화장실을 따로 갖춰 미술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1박 2일간 한옥 숙박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영천에서 한옥 숙박체험 1호점이 되는 셈이다.

모선재 가는 길옆의 정려각은 구의헌의 조부인 모헌공 권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2006년 안동에서 이곳으로 묘소 이장과 함께 복원됐다. 1358년 안동 상촌에서 태어난 모헌공은 개령현감 등 12주 수령을 역임했으며 모친 별세 때 3년 여묘살이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모헌공은 학문이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모헌유묵시첩'(慕軒遺墨詩帖) 2권이 보물 668호로 지정돼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돼 있다.

모산마을에 살고 있는 구의헌 14세손 권효락(48) 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섬멸하고 영천성을 탈환한 충의공 권응수 장군이 가상리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풍영정 미술관으로 변신

도화원길을 나와 다시 가상리 시안미술관 쪽으로 걷다 보면 뒤쪽 마을 구석구석에 있는 예술작품을 보물찾기하듯 감상할 수 있다. 마을사박물관, 바람의 카페, 빈집 갤러리의 마루, 방앗간 등을 지나 길모퉁이 새로 들어서면 풍영정 가는 골목이 나온다.

풍영정 가는 골목은 입구부터 예술작품이다. 작년 여름 미술마을 조성 때 잡초를 걷어내고 바닥에 복사꽃 모양의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 제목도 '풍영정, 복숭아꽃 열리다'로 복사꽃 활짝 피는 4월에 찾으면 봄의 흥취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발길에 화사한 복사꽃 작품이 밟혀 흐려질까 걱정도 된다.

산형대문을 거쳐 풍영정에 들어서면 정원 앞마당 구석에 '자연발효 생태 뒷간'과 빗물을 활용한 '자연욕실'이 미술마을 프로젝트의 하나로 조성돼 있다. 전통 생활공간에서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과 전통농법의 생태 순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풍영정은 조선 현종 때의 학자인 권응도의 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정자이다. 마루 안쪽의 풍영정창건기사(風詠亭創建記事)의 임신팔월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1932년에 건립됐으며 1969년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풍영정 온돌방에는 '풍영정' '정겨운 마을길' '귀애고택' 등 채색화 3점이 설치돼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권응도의 후손들은 매년 중복날 풍영정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유대를 다진다고 한다.

가상리 마을 중앙의 방앗간 옆에는 500년 세월을 지켜온 '풍영정'이라는 느티나무가 있다. 안동 권씨 후손들은 신녕 입향조인 구의헌 권열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 아래에서 시와 학문을 강론하고 예절과 활쏘기를 익혔다고 한다. 이후 구의헌의 현손인 권응도가 나무 이름을 풍영정(風詠亭)이라 하고 자신의 아호 또한 풍영정이라 했다. 풍영정 기문에 나오는 풍영정은 이 나무를 의미한다.

◆자연을 품에 안은 귀애정(龜厓亭'경북도 문화재자료 339호)

작년 11월 미술마을이 문을 연 뒤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귀애정을 찾는 도시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귀애정은 귀애고택 안쪽의 나지막한 우목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귀애고택 주위에 '저 하늘 별을 찾아' '휴식과 기다림' '거북아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고추잠자리의 여정' 등의 작품이 설치돼 있어 한옥의 정취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귀애정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공조참의를 지낸 조극승(1803∼1877)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마루방 상부에 있는 병진년 청명절에 쓴 귀애정 기문으로 1916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78년 기둥과 마루 부분을 중수했다. 연못에 비친 달을 볼 수 있어 수월루(水月樓)라 이름 붙인 누마루 3면의 들문은 일부 도둑맞아 따로 보관하고 있다.

귀애정 앞에는 가로 70여m, 세로 30여m 크기의 네모난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토종 연이 자라고 있으며 주위에 담장을 두르지 않아 정자에서 주위 산과 들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연못 내에 둥근 섬을 조성하고 섬에 육각정을 설치한 뒤 나무다리로 정자와 연결해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육각정은 30여 년 전 붕괴돼 2009년 다시 복원됐다. 귀애정 앞 돌거북도 도둑맞은 뒤 이때 새로 설치됐다. 귀애정 왼쪽에는 정면 3칸 규모의 사당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뒤쪽 산자락에는 300여 년 된 소나무 4그루가 운치를 더해준다. 이전에 동네 사람들이 단오 때 그네를 타기도 했단다.

귀애고택은 맑은 날 보현산 정상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귀애의 증조부인 조명직이 조선 영조 43년(1767년) 화남면 귀호리로 이주하여 세거지의 기반을 마련했다. 귀애고택의 전체 규모는 귀애정, 사당, 별묘, 육각정 등을 포함해 47칸의 큰 집이었다고 한다. 1988년 화재로 사랑채, 아랫사랑채 등 15칸이 소실된 뒤 1991년 현재의 사랑채를 복원했다.

◆미술마을의 또 다른 고택들

▷쾌우정(快憂亭)=조선 선조 때 훈련원 첨정을 지낸 이덕수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그는 임진왜란에 참전해 청송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천과 경산 사이에서 적을 토벌했다. 전란 후에 추곡(가상)에 돌아와 쾌우당을 지었으며 후손들이 중건하면서 당을 정으로 바꿨다.

▷일성정(日省亭)=충의공 권응수의 종제(從弟)로 병조참판에 추증된 일성재 권응심을 추모하기 위해 1931년 건립한 정자이다. 그는 의병으로 참전해 항상 최선봉에 섰으며 정유재란 때 도산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후 선무원종 1등 공신에 채록됐다.

▷덕강서원(德崗書院)=조선 세종 때의 문신인 정간공 양효지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다. 양효지는 세조의 왕위 찬탈 때 화산리로 피신해 우거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책과 거문고로 소요했다고 한다. 1621년 건립됐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921년 중건됐으며 최근 대규모 중수를 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강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강당 좌우측에 동서재를 배치해 학(學)의 공간을 형성했다. 강당 뒤에는 묘(廟)의 공간인 사당을 배치했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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