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은 신여성이었나? 자유연애를 앞세운 방탕한 예술가였나?
나혜석(1896~1948)만큼 화제를 몰고다닌 여성은 일찍이 없었다. 미모와 재능, 첫 여류 서양화가라는 간판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결혼과 불륜, 자유연애론은 봉건사회였던 1920, 30년대를 뒤흔들어 놓었다.
1896년 오늘, 경기도 수원에서 상류층 집안의 넷째로 태어났다. 동경 유학 중 유부남인 시인 최승구와 사귀며 여권신장과 독립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승구가 죽자, 6년간 따라다니던 친일파 변호사와 4개항의 조건(시부모를 모시지 않고, 죽은 애인의 비석을 세워준다)을 내걸고 결혼했다. 첫 개인전을 연 뒤 파리에 머물면서 천도교 교령 최린과 불륜을 저지르다 이혼당했는데, 최린에게 '정조를 유린했다'며 거액의 위자료를 청구해 세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잡지에 기고한 '이혼고백서'에서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말년은 비참했다. 가난 속에 홀로 떠돌다 행려병자로 죽었다. 사회'경제적인 혜택을 받은 몇 안되는 신여성이었으나, 자기과시적인 행동을 앞세우다 지탄과 질시 속에 쓸쓸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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