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보이는 제천은 영락없는 산악도시다. 우선 도상(圖上)으로 빽빽한 등고선 일색이다. 단순 통계상 임야 대 평야의 비율도 7대 3으로 산림이 압도적이다. 북쪽으로는 차령산맥이,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이 지나고 시의 경계를 따라 월악산, 백운산, 문수봉 등 20여 개 산들이 도열해 있다.
그런데 도시 이름이 왜 제천일까. 제(堤)는 둑이니 물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제천은 물의 도시? 그러고 보니 국사 시간에 배운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인 의림지가 여기에 있다. 내륙의 농경 문명을 살찌운 물줄기가 제천에서 발원했다니.
또 있다. 우리나라에서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 이 호수엔 괴산'제천'단양'충주 등 4개 지자체가 경계를 맞대고 있다. 단순 비교로 네 도시 중 제천의 수역이 가장 넓다.
충주호의 또 다른 이름 청풍호도 바로 '청풍명월' 제천의 별칭이다. 제천이 산간도시라는 낡은 브랜드를 지우고 물의 도시로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물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진도를 나가보자. 제천은 단양, 영월, 충주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모두 산악도시다. 부근에만 수십여 개의 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우뚝 솟은 산은 계곡을 만들고 계곡은 강으로 이어진다. 이런 지형을 배경으로 하천이 잘 발달했다. 복잡하게 얽힌 산 사이로 남한강, 동강이 물길을 잇고 이 하천을 따라 단양 8경, 제천 10경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충청감사로 부임했던 정인지도 제천을 둘러보고 '가는 곳마다 물이 넘치고 청산(靑山)의 위엄이 준엄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충주호 위에 우뚝, 퇴계 자취 서려
벚꽃이 막 잎을 열었다. 흔들거리는 연분홍 꽃잎을 따라 봄이 같이 유영한다. 금수산으로 향하는 길, 일행을 태운 차는 호반을 달린다. 저수용량 27억t의 충주호가 넓게 펼쳐진다.
버스는 잠시 후 장회나루를 지난다. 옛날 이곳은 내륙 수운의 중심지. 서해에서 올라온 소금배와 서울로 향하던 뗏목상들이 흥정을 벌이던 곳이다. 호수면과 직각으로 선 옥순, 구담봉의 바위 절경과 거울처럼 펼쳐진 호수를 감상하며 한참을 지나 오니 버스는 어느새 금수산 입구에 이르렀다.
금수산에서 이황의 흔적과 만난 건 뜻밖이었다. 당쟁을 피해 향직(鄕職)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단양 곳곳을 돌며 자취를 남겼다. 구담, 옥순봉에서는 두향(杜香)과 로맨스를 뿌렸고 산세에 반했던 대미산(大美山)에서는 산 이름을 직접 명명했다. 어느 한적한 날 시종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퇴계는 풍경에 매료돼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경치'라 칭하며 '금수산'(錦繡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등산로는 적성면(상학)에서 오르는 코스와 상천리 코스로 나뉜다. 폭포와 호수 조망과 암릉 산행을 즐기기에는 상천리 코스가 무난하다. 주차장에 내려서니 마을 입구에 늘어선 산수유가 일행을 맞는다. 노란 색감에 은은한 정취는 봄의 전령답게 들판을 압도한다. 노란 꽃그늘에선 아낙들이 봄나물을 캐느라 분주하다.
10여 분 후 작은 암자와 만나고 길은 좌우로 갈린다. 용담폭포가 있는 왼쪽으로 길을 잡아든다. 잠시 후 힘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너머로 큰 물줄기가 포말을 날리며 낙하한다. 옛날 주왕이 세수를 하다 대야에 비친 폭포를 보고 동쪽으로 가서 이 폭포를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이 폭포가 용담폭포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폭포 왼쪽으로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산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바위능선과 50도가 넘는 급경사가 계속된다. 몇 걸음 사이로 설치해놓은 로프와 철계단이 이곳이 험산임을 웅변해준다.
◆금수산 명물 족두리'독수리바위에 매료
숨을 다독이며 망덕봉을 향해 오른다. 종아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오고 호흡이 빨라지면 가끔씩 은비늘을 일렁이는 호수 경치를 감상하며 피로를 잊는다.
1시간쯤 올랐을까 왼쪽으로 아담한 능선 하나가 펼쳐졌다. 올망졸망한 암릉을 따라 노송들이 경치를 보탠다. 8부 능선 밑에 커다란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금수산의 명물 족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다. 새색시 머리 위에 흐르듯 얹힌 머리장식은 살랑이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다. 독수리바위의 기상은 더 늠름하다. 호수를 응시하며 날개를 추스른 폼이 금방이라고 호수로 솟구쳐 잉어라도 한 마리 채 올 기세다.
바위능선을 지나면 다시 한 번 급경사가 이어지고 망덕봉에 닿는다. 망덕봉은 육산으로 된 평범한 안부. 사면이 잡목에 가려 조망도 별로다. 상학이나 백운동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능강계곡으로 내려갈 때 들르는 휴게소 같은 곳이다.
망덕봉부터는 본격적인 흙길이다. 푹신한 낙엽길엔 때 이른 생강나무와 진달래가 점으로 물결친다. 얼음골재를 지나 40여 분쯤 완만한 능선을 오르자 암릉 틈에서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월악'소백산 등 중부권 명산 한눈에
망덕봉과 달리 정상은 전형적인 암봉. 좁은 통로를 올라 정상석에 올라서자 중부내륙의 산들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남으로는 월악산이 우뚝하고 동쪽에서는 소백산천문대가 지척이다. 호수 너머엔 황장산이 옅은 산그림자로 일렁인다.
어느덧 호수에 노을이 어린다. 산기슭의 서어나무는 동쪽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부처댕이봉 너머 호수를 내려다보며 하산길로 접어든다.
금수산 곳곳에선 성터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망덕봉 바로 아래엔 축성 흔적이 역력하고 정상 밑에도 '동문내'라는 지명이 전한다. 동쪽 문루(門樓)가 있던 자리로 추측된다. 한참을 내려와 어댕이골, 정남골에도 성터와 민가 흔적이 남아있다. 작은 돌담이 곳곳에 둘러쳐진 걸로 보아 성내(城內)엔 제법 큰 규모의 민가가 있었던 것 같다.
역사가들은 공민왕의 피란과 관련한 흔적이거나 신라와 백제가 한강을 놓고 다툴 당시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월악산에 덕주공주의 신라성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의태자 일행의 피란처였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성터 옆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주변에 많은 약초들이 군집을 이루었다. 개울가엔 산수유 고목이 노란 물감을 풀어내고 있다. 계곡은 마을로 통하고 20여 분쯤 걸어 나오면 아침에 보았던 산수유 군락지가 다시 일행을 맞는다.
4, 5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산에서 많은 사연, 역사와 함께했다. 퇴계의 흔적을 만났고 중원(中原)을 다투던 신라와 백제의 각축 현장도 둘러보았다.
봄 호숫가 유쾌한 산행은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액정 같은 호수 물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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