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재박의 작명탐구] 야구선수 박찬호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사교성 좋아"

마침내 만물이 소생하는 완연한 봄이 왔다. 따사로운 햇살과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 그리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주말에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야외로 나들이를 간다면 봄의 정기도 만끽하고, 즐거운 추억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야구장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야구장의 묘미는 관중들의 함성과 치어리더들의 응원, 여기에 고소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까지 즐기며 경기를 관람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야구는 농경민족의 스포츠, 축구는 수렵민족의 스포츠라고 한다. 야구는 파종과 수확의 계획이 분명한 농사일처럼 게임 형식이 공격과 수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축구는 사냥처럼 상황이 유동적이고 순간순간의 전략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경민족을 선조로 둔 우리나라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주장이 아주 허황된 말은 아닌 것 같다.

야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이니만큼, 야구선수들도 그에 못지않은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 특히 야구스타를 넘어 국민적인 영웅과도 같은 박찬호 선수는 더욱 그렇다. 위력적인 강속구와 낙차가 큰 커브로 '코리안 특급'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이며, 메이저리그에서 100승을 거둔 자랑스러운 이력도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에서 명예롭게 은퇴한 지금까지도 야구에 대한 애정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그의 이름 박찬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한국 야구계의 전설로 빛날 것이다.

박찬호(朴贊浩)는 1973년 6월 29일 충남 공주에서 출생했다.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돼 미국에 간 적이 있었던 그는 그곳에서 야구선수 브렛 버틀러의 경기를 보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꾸게 되었다. 출전했던 청소년 대표 야구대회가 끝난 후 그는 한화 이글스의 입단을 제의 받았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재학 중에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그는 마침내 1994년, 자신의 야구인생을 빛낼 첫 구단인 LA다저스에 정식으로 입단하게 된다.

그가 야구투수로 유명해진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건강하고 튼튼한 신체적인 조건이 우선이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자기발전을 위해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그의 성격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의 '명사와 함께하는 고향여행'편에서는 게스트로 출연하여, 야구 이외의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가 많은 돈을 벌고 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성실한 성격 때문이었다.

성명학은 한 사람의 성격을 통계적으로 판단하거나 결정짓는 것이다. 박찬호의 부르는 이름은 초성(初聲)이 사주(四柱)상에 수(水), 금(金), 토(土)로 나타나며, 가장 중요한 금과 토가 상관(傷官)과 재성(財星)으로 작용하는 이름이다. 부르는 이름에서 상관이 가지는 성격은 인내심이 강하며, 두뇌가 좋아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뛰어나고 고집이 세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상관이 재성과 동주하면 그 성격이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많은 사람들과 유대관계가 좋다. 직업으로는 예체능도 좋지만 부동산 중개업, 각종 영업직, 외교관 등으로 길하며, 재복도 많아 사업가로도 좋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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