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라일락꽃 향기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먹게 된 것은 외국병원 연수를 다녀온 뒤부터였다. 새벽 컨퍼런스에 가면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프랑스 식빵)을 먹을 수 있었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 와서도 동료교수께 넘긴(?) 환자들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비싼 국제전화를 해야 했다.

'선생님 빨리 오이소. 와 내 놔두고 갔습니까?'

유난히 큰 키에 0.1t(100㎏)이 넘는 거구의 환자가 전화기를 잡고 엉엉 운다. 경상도 개구쟁이 신랑과 서울댁은 닭살(?) 돋을 사이좋은 중년부부였다. 잉꼬부부의 싸움은 밥 먹듯 하는 데도 모두 사랑이였다. 그날도 '0.1t'께서는 부인 성화를 피해 발코니로 나갔다.

"니 계속 그캐싸~면 여~서 확 뛰내려뿔끼다." 시늉만 내 본다는 게 정말 '꽝!' 떨어졌다. 자유낙하 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얼굴의 모든 뼈를 으스러뜨렸다. 생명이 위중하고 수술이 급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대구 '마검'들은 밤을 새워 원판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0.1t'께선 부인의 눈물 정성으로 잘 회복했다. 매번 거울을 보며 원판보다 낫다며 웃는 모습이 병실을 따뜻하게 했다. 치아 복원 단계만을 남겨두고 한국을 떠나오게 되었다. 뒤를 맡아준 교수님이 훨씬 잘 해 주셨지만, 나의 국제전화 한 통이 '0.1t'을 엉엉 울게 만들고 나도 의사의 길을 마음 속에 새기고 새겼다. 전화하길 참 잘했다.

꿈 많던 둘째딸 J양은 남동생에게 대학 진학을 양보하고 취업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새벽길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가 되었다. 의식이 회복된 뒤 성형외과로 옮겨왔지만 너무 마음이 아파 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했다. J양은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다. 안과문제도 있어 한 쪽 안구 적출이 필요했다. 그러나 외상 후 우울증이 심해서 반대편 눈의 시력을 보전키 위한 안구 적출은 뒤로 미루고 실명 안구의 신경을 누르고 있는 광대뼈 위치 및 모양 복구수술을 하기로 했다.

"교수님 이미 안보이는데, 수술 안 할래요." 어렵게 설득하고 정성껏 수술했다. 다음날 아침 회진시간, 빛이 보인다며 엄마와 딸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뒤 여러 번의 수술도 잘 견뎌내서 얼굴도 예뻐졌다. 한참 후에는 내게 "뭘 할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J양아, 넌 이런 기적을 경험했으니, 간호사 공부를 하면 어떻겠니?' 검객의 추천서와 함께 간호학과에 지원한 그녀는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 사랑을 갚고 있다.

외상환자는 사고 직후의 돌봄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외롭고 긴 재활의 시간 동안 잘 돌봐야 한다. 가족들에게도 격려와 확신을 주어야 환자를 잘 돌볼 수 있다. 믿음은 지친 환자에게 이기는 힘을 주고 의사들도 믿지 못할 회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보이진 않지만 깊고 깊은 마음을 갖고 사는 인간이다. 다친 얼굴 너머 마음 응어리까지도 회복시켜 드리고자 한다고 해서 성형외과의사를 '칼을 든 정신과의사'라고도 한다. 봄날이다. 밖으로 나가 라일락꽃 향기 맡으며 지난 일을 떠올리기가 좋은 날이다.

이경호 (성형외과 전문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