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추할 수 없다면 세계를 창조할 수 없고, 모든 예술은 유추와 은유에 기반한다'는 말은 책 '생각의 탄생'에 나온다. 많은 예술가, 특히 시인은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닮지 않은 것에서 닮은 것을 찾아내는 기쁨'에 대해 쓰고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모든 사물은 은유다"고 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해야 한다. 그래야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아니 난폭하다고 해야 하지 않나? 어떻든 유추하기 힘든 오늘의 미술이 뭔가 충격과 부담, 또는 당혹감으로, 때로는 솜털처럼 가벼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When in Rome'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경이 나온다. 마침 그곳에서는 '차이궈창'이라는 중국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박제된 동물들이 떼를 지어 달려가고 날아가는 장면은 과히 위압적이고 압도적이다. 원형으로 뚫린 중앙 홀에는 승용차들을 장난감처럼 대롱대롱 매달아 시대의 불화를 관통하는 이 작가는 예측 불가능한 화약을 사용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독특한 설치 작가이다. 거대한 스케일과 상상력이 인상적인 이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강력해서 우리는 그 무엇을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대미술? 참 어렵다. 그렇다.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볼 만한 좋은 전시회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거나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럼 이렇게 다시 되묻는다. "요즘 일상이 옹색하신 거죠?" 하고. 물론 농담이지만 말이다. 그냥 어렵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전시 없냐고? 이해 가는 말이다. 일상도 무겁고 힘든데 작품도 난해하고 무거운 걸 봐야 하나 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일상은 그다지 가볍지 않은 두통과 무겁고 힘들고 외로워서 비벼야 할 언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역설적이지만, 그럴 때 미술관에 가서 한없이 떠들썩한 작품을 관찰하는 일은 당신의 외로움을 온전하게 토닥거리거나 화해하는 일이거나, 유추할 수 있는 자기를 보는 일이니까 기꺼이 "꼭 가서 보고 미술을 편애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어차피 지금의 미술은 상투성을 훌쩍 넘은 난해 아니면 충격이니까 당신의 사나운 정서를 추슬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 많이 보면 유추할 수 있는 자기 세계가 있을 거야." 아마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규정 다음에 내가 했던 말이다. 그러니까 '보는 만큼 공부 된다' 정도인데 이런 출발은 곧 그림에 대한 안목은 넓어지고 또한 그것을 흡입하고 익히기 위한 좋은 태도라고 보는 것이다. 미술 강좌를 듣고, 미학'미술사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술은 기본적으로 비주얼이다. 어느 시대의 미술이든 시대의 맥락, 작품과 작가가 마주한 현실에서 작품이 탄생하고 때로는 미술사적인 흐름 속에서 작품이 이해되기 때문에 그러한 전반 지식을 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이다.
전시장에서 있는 풍경이다. 형상이 안 보여 읽을 수 있는 단서나 혐의, 회화적 장치가 없고 스케일만 존재하는 작품, 또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작품 앞에서는 일반 관찰자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거나 감성의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테면 개념적인 작품을 보면 당혹스럽다는 얘기다. 그들 중 머쓱해하며 물어온다. "저기… 작품을 볼 줄 몰라서. 무슨 뜻인지" 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경우이다.
이쯤 되면 "작품이란 게 유추하기 어려운 모호함을 갖고 있지요"라며 점잖게 물리치기는 궁색한 표현이 된다. 작가도 관찰자에게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이다. 단순하게 설명되는 게 오늘의 미술이 아닌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발품 팔아 가며 관심을 나타낸 관객에게 뜨악하니 온몸의 감각 느낌만을 요구하기란 도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왜 미술이 깊은 사유거나 때로는 한없이 가볍기 그지없는 간극을 왔다 갔다 할까? 미술작품이 어려워지고 난해해지는 것은 세상일이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작품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과 감각의 본능'이다. 제대로 된 통찰은 단순하다. 그런 만큼 좋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유추하기 위한 관객의 몫도 중요하다. 언젠가 대중 가수가 한 말이 떠오른다. "넌 베토벤, 쇤베르크를 공부 없이 온전히 알아먹을 수 있냐!!"고 .
권기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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