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막말 세태

중국 오대십국 시대에 여러 왕조의 재상을 지낸 현실정치가요 시인이었던 풍도(馮道)는 특이한 시를 남겼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라는 '설시'(舌詩)다. '입은 화를 불러일으키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곳곳의 감옥으로부터 몸이 안전할 것이다'란 내용이다.

조선시대 연산군은 이 시구로 '신언패'(愼言牌)라는 것을 만들어 신하들의 목에 걸고 다니게 했다고 한다. 자신은 군왕으로서 최소한의 위신과 품위마저 내동댕이친 채 황음무도한 언행을 일삼으면서, 신하들에게는 '입을 다물지 않으면 지옥이나 감옥행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살기등등한 경고였다.

불과 30~40년 전 유신 체제나 5공 군부 독재정권 시절만 해도 지식인이나 청년 학생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언패'를 달고 살아야 했다. 정보기관의 눈과 귀가 두려워 술집에서도 시국에 대한 발언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설시'가 무색할 만큼 백화제방(百花齊放)이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언어의 유희에다 막말이 난무하는 천박한 세태에 놓여 있는 듯하다. 옛 어른들이 '돌상놈의 세상'이라 호통을 쳐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막말'의 사전적 의미는 '함부로 지껄이는 말' 또는 '속되게 마구잡이로 하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막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린 학생부터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어른까지 욕설이 섞인 천박한 막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전투구의 정치판이 특히 그 온상인 듯하다. 시청률 경쟁에 사로잡혀 선정적인 장면과 비속한 언어들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방송도 책임이 크다. 막말의 폐해는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지난 총선 때 '나꼼수'의 김용민 후보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저질 발언을 일삼다가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연예인 김구라도 막말 파문으로 방송에서 하차했다. 영화배우 출신의 야당 대표라는 사람의 막말식 화법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말에는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이 담겨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언행은 그 사회의 품격을 방증한다. 예나 지금이나 '혀 아래에는 도끼가 들어 있는 법'임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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