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를 기억하십니까? '세대'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세대, 베이비붐세대, 4'19세대, 386세대 등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령층이었고, 그 이후로 X세대, Y세대, N세대, W세대, S세대 등의 신조어들이 연이어 쏟아졌습니다. 그중 'X세대'는 이전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사회'문화적 풍토를 형성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는 세대였습니다.
기성세대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지금까지 봐왔던 인종과는 완전 다른 별종이라며 혀를 내둘렀던 이들이 바로 X세대였지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첫 세대였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전 세대와는 가장 큰 갈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이들이 이제 40대를 전후한 기성세대가 되어 사회'문화의 주역으로 다시 귀환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의 감성과 함께 말이죠.
◆대중문화 전면에 떠오른 1990년대 감성
이달 13일 MBC 뮤직뱅크에서는 1994년 발표된 전람회의 곡 '기억의 습작'이 12위에 올랐다. 무려 16년이나 지난 노래가 순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은 바로 최근 흥행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건축학 개론' 덕택이었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96학번 대학생의 첫사랑의 추억을 더듬은 이 영화 속에는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비롯해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요들이 대거 등장해 향수를 자극한다. 삐삐와 무스, 휴대용 CD플레이어, 세미 힙합 패션 등 이제는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그 시절 추억의 물건들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덕분에 이 영화의 주 소비층은 3040세대들이다. 예스24 영화 예매자층을 살펴보면 30대의 예매점유율이 36%로 20대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타 영화들의 주 예매층이 20대에 쏠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건축학개론'이 1990년대 X세대인 30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삼력 영화감독(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은 "영화감독들의 전성기를 30대 후반 정도로 보는데 딱 지금의 X세대와 맞아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있다. 또 하나는 영화시장이 20대 초반에 집중됐던 주 타깃층만을 가지고 전쟁을 벌이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르다 보니 문화소비에 익숙한 30대를 끌어들여 주 관객층을 넓히려는 전략적 측면도 있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청춘문화는 가요계에서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상당수 노래들이 1990년대를 풍미했던 곡들이다. KBS '불후의 명곡', SBS 'K팝스타', Mnet '슈퍼스타K' 등은 1990년대 명곡 리메이크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나는 가수다'는 신세대들은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김건모, 장혜진, 조관우, 임재범 등의 가수들을 다시 부활시키는 역할을 했다. 신승훈, 이승환 등은 심사위원으로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X세대의 파워가 두드러지는 곳은 대중음악계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과 1994년에 데뷔해 전성기를 맞았던 박진영은 YG와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으로 가요계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1990년대 후반 결성됐던 아이돌 그룹 '신화'가 데뷔 14년 만에 재결합하면서 1990년대를 부활시키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 섰던 세대
X세대는 1970년대 태어나 1990년대 초'중반에 '나는 나'를 외쳤던 세대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탈(脫)정치, 감성을 우선시했다. 이들이 대학시절을 보냈던 1990년대에는 386세대 때와 같은 독재정권은 사라진 뒤였기 때문에 대학가에는 '왜 운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혼란이 팽배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X세대의 코드를 '자유'로 정의했다. 김 교수는 "X세대는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시대에서부터 민주화하는 시대에 태어나서 생활한 사람들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렇다 보니 이들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조적이고 거시적 문제보다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며, 개인의 자유가 억압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 보수적 가치든 진보적 가치든 거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X세대는 아날로그 세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분기점에 서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양쪽의 문화에 모두 익숙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풍요가 어느 정도 이뤄진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풍족한 시기를 보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지금도 대중문화 영역에서 주요 소비자다. 1990년대 가요계는 전성기이자 문화소비 호황기였다. 워크맨을 늘 귀에 꽂고 다녔던 X세대의 폭발적 지지에 힘입어 당시 가요계에서는 서태지와 김건모 등 대형 가수들의 앨범은 200만 장은 우습게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혜성과도 같이 등장한 서태지는 X세대의 감성을 규정짓는 아이콘으로 칭송받는다.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별종'으로 분류됐던 자유분방한 감성을 지닌 X세대의 폭발력을 끌어낸 것이 바로 서태지였다는 평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새로운 문화혁명가였다. 이전 세대가 투쟁가로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구시대 버전이 됐고, 입시와 각종 규율에 얽매여 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던 노래가 바로 '교실 이데아'가 됐다.
◆정치에서도 X세대 힘 통할까?
X세대는 보수와 진보라는 오랜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서는 세대다. 구체적 정파에 소속되길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김태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개인의 자유 신장에 호의적인 세력은 누구든 좋아할 수 있고, 이를 해친다면 강력히 반발하는 세대가 바로 X세대다. 이들의 힘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던 것이 바로 촛불시위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PC통신과 인터넷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토론을 즐기는 분위기에 익숙한 X세대에게 놀이와도 같은 방식으로 정치에 접근하는 SNS의 등장은 더욱 강한 파급력을 부여했다.
하지만 꽤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던 이번 4'11 총선은 예상 외로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나버렸다. 과연 세상의 변화를 여는 세대였던 X세대의 시선으로 보면 기존 정치가 다 마땅치 않았던 것일까? 젊은 시절 그랬듯 여전히 정치에는 무관심한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일까?
김 교수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공론장으로 만든 게 바로 촛불시위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는데 다만 이번 선거에서는 지방의 경우 X세대의 힘보다는 다른 세력의 힘이 압도적이다 보니 존재가 묻힌 것처럼 보일 뿐"이라며 "분명 이들이 좀 더 나이를 먹고 사회의 주축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더 많이 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특히 대구경북의 경우 지금까지는 정치에 있어 지역적 연고가 중요했지만 X세대는 '자유'라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개인적 이익에 더 영향력을 받는 세대이다 보니 분명 변화의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4'11 총선에서 이미 그런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됐다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이다. 지금까지는 부모 세대가 자식에게 밥상머리에서 정치적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교육했다. 과거에는 "정치인 누구는 어떻다더라, 그 사람은 빨갱이다" 이렇게 부모가 말을 하면 그 가치가 그대로 젊은이들에게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가치관의 흐름이 거꾸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 이제는 자식들이 거꾸로 "그 후보는 문제가 많다. 무조건 특정 정당을 지지해주면 안 된다"고 부모를 설득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이며, 앞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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