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이지누 지음/알마 펴냄
한국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섬세하게 기록하는 작가 이지누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남도의 절터로 떠났다. 폐사지(廢寺址)는 '폐허'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리 인기 있는 답사지는 아니다. 사진작가 이지누는 폐사지만이 지닌 미적 가치에 주목한다. 폐허란 그저 지저분해서 반드시 정리하고 깔끔하게 정돈해야 할 공간만은 아니다. 작가는 폐허가 인간의 본성과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톺아보지 못하는 눈과 마음으로 어찌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하며 오히려 되묻는다.
그는 다구를 챙겨들고 월남사터를 찾는다. 탑 앞에 향을 사르고 차 한잔을 올린다. 월남사 터 앞에서 차를 마시며 그는 완당 김정희의 글 한 줄을 되뇐다. 다양한 역사적,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폐사지에서 펼쳐내는 작가의 깊이 있는 글은 독자들에게 울림을 준다.
벌교 징광사는 쟁쟁한 스님들이 거쳐 간 도량이었지만 지금은 풀들만 가득하다. 극심한 종이 부역 때문이다. 조선시대 종이 부역은 수많은 절들을 폐사시키는 원인이었다. 저자는 폐사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백성들의 애환까지 가슴속에 담아 글을 구성한다. 유물에 대한 치밀한 불교미학적 분석과 고문서상의 흥미로운 기록들도 담았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민통선 지역을 다녔고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이후 문을 닫기 시작한 태백과 사북, 그리고 고한 지역의 무수한 폐광, 서해안의 염전, 도시의 재개발지역들에 대한 사진작업을 10년 이상 해왔다.
무엇보다 폐사지를 더듬으며 긴 시간 폐사지를 사진에 담는 그 눈길, 그 시간의 깊이가 담겨 있는 듯하다. 모두 여덟 권으로 기획된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는 앞으로 전북, 충청, 경북 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364쪽, 2만2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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