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그는 아내와 잔다 (1)

윤 선생은 현대무용수였다. 솔직히 말해 가까이서 무용수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무용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딱히 무용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현대무용이라니. 직업도 직업이지만, 그의 병인 연골암도 흔한 암은 아니었다. 내게 왔을 때는 연골암이 오른쪽 눈 바로 위에 있는 머리뼈로 전이돼 한쪽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척추, 골반을 비롯해서 팔, 다리, 어깨뼈까지 암이 없는 곳이 없었다. 통증이 심해서 몸을 비트는 것도 힘들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컸다. 푹 자면 푹하고 죽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멀쩡한 왼쪽 눈은 항상 뜨고 있었다. 두 시간 이상을 연달아 자본 적이 없다. 간병하는 준이 엄마는 환자보다도 더 환자 같았다. 그들은 올망졸망한 아들만 셋이 있다. 준이 막냇동생이 세 살이니까 그녀는 잇단 출산과 육아로 지쳐 있었다. 그런 몸으로 몇 달째 간병을 하고 있으니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은 똑 부러질 것 같았다. 딸처럼 생각하는 시어머니가 보내준 보약 때문일까?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그래도 잘 버티고 있었다.

윤 선생의 왼쪽 눈은 수면부족으로 늘 충혈돼 있었다. 그리고 암 덩어리가 혀로 가는 신경을 눌러서 말도 어둔했다. 당연히 삼키는 능력도 떨어졌다. 혹여나 물 한 모금을 잘못 삼키면 금방 사레가 걸렸다. 그다음에는 기침하느라고 고생했다. 혈소판이 부족한 그는 그것이 자극이 돼 목구멍에서 피가 올라오거나 코피가 줄줄 흘렀다. 딱했다.

준이 엄마는 "어어 버버" 하는 그의 말을 잘도 알아들었다. 나는 그녀처럼 말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핏발이 벌겋게 선 왼쪽 눈동자에서 뿜어나오는 강렬한 생명의 빛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의 눈은 말을 하는 듯했다. 입원하고 일주일쯤 뒤부터 나도 준이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공책에 대충 적어주는 글과 말소리로 소통이 가능했다. 신기했다.

의사소통이 되니까 그도 신이 났다. 회진시간이 어떨 때는 한 시간을 훌쩍 넘을 때도 있었다. 아침 회진에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선생님, 소원이 있어요. 아내를 안고 자고 싶어요."

아!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그들이 젊은 부부라는 것을. 준이 엄마는 옆에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회진을 마치고 처방을 입력했다. '305호 무료로 쓰는 일인실로 전실해 주세요. 보호자 침대를 치우고, 빈 침대 하나를 환자 침대에 붙여 주세요. 문 앞에 가리개 꼭 설치해 주세요. 그리고 305호 들어갈 때는 반드시 노크하세요.' 오랜만에 그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서로의 손을 뻗어서 마주 잡은 모습으로.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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