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한 병. 고춧가루 한 봉지. 볶은 땅콩.
튀긴 검정콩. 무말랭이 한 봉지.
그리고 작은 스티로폼 박스 하나.
주방에 펼친 택배의 목록이다.
먹을 것들을 주욱 펼쳐놓고 생각한다.
여든을 바라보는 외사촌 형수는
괜히 이런 것들을 보내 사람을 울린다.
내 인생이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없다.
눈시울을 붉히면서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식혜가 들어 있었다.
안동 땅에서는 식혜를 감주라고도 하고
더러는 단술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단술이 아니라 단심(丹心)이다.
붉고 뜨거운 마음이 빚은 음식.
어머님 생각에 나는 운다.
외사촌 형수가 어떻게
쉰아홉 고종사촌 시동생에게 이런 걸 보낼 수 있나.
그러나 이런 것이 내게로 왔다.
분명 어머님의 현몽이 있었으리라.
이런 저런 것들을 만들어 대구로 보내라.
어머니는 그렇게 부탁하셨으리라.
이 목록은 입으로 먹을 음식이 아니다.
그냥 가슴에 넣으면 되리라.
그게 때로 울음이 되어 솟구치리라.
술술 풀리는 언어로 격식 없이 세상을 노래하는 김선굉 시인의 시입니다. 시인은 너무나 귀한 택배 앞에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있네요. 여든을 바라보는 외사촌 형수가 쉰아홉 고종사촌 시동생에게 택배를 보낸 겁니다.
이 귀한 택배를 연결해준 끈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아니라면 두 집안이 가까운 인연이 될 수 없었겠지요. 어머니는 살아 있거나 돌아가시거나 한 번 맺은 인연들을 이렇게 돌보나 봅니다. 우리에게 오는 택배가 이렇게 귀한 인연으로 오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택배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의 현몽으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세상 참 환해지는 봄날입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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