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南草

南草

조선의 가장 큰 산업은 농업이다. 임금의 관심은 '백성의 밥'이고 배를 곯는지 아닌지였다. 아예 세종(世宗)은 권농교서(勸農敎書)에서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농사는 국정에 있어 무엇보다 먼저 하여야 할 것"이라 했다.

그런데 담배(南草)가 임진왜란 때 들어오면서 골치였다. 담배 재배가 늘어 옥토(沃土)가 담배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담배 재배를 금하자는 글이 이었다. 정조 때 기록은 그 예다. 정조가 전국에 농업 아이디어를 구하는 윤음(綸音'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을 내렸고, 수많은 상소 중엔 담배의 폐해 글이 여럿 나왔다.

전직 관리였던 장지한은 "담배 농사를 많이 짓는 바람에 기름진 땅이 다 없어지고 무익한 투자에 쏠리고 있다"며 "담배의 폐해는 중외에 포고하여 파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도 "농업이 침삭되는 까닭은 담배가 성하기 때문"이라며 "좋은 밭이나 비옥한 땅에 모두 담배를 기르는 이랑을 만든다면 나쁜 풍습"이라 했다. 특히 그는 "의원이 담배를 양약(良藥)이라 치켜세우며 '담을 다스리고 속을 덥게 하여 벌레 죽이는 공이 빈랑(약재의 하나)보다 낫다'고 말한다"며 흡연을 부추기는 의원 잘못도 지적했다.

조선 말 무렵엔 담배는 조선 백성을 연상시키는 대외 이미지가 됐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김영자 전 교수가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유럽인의 글과 사진을 모은 책 '조선왕국의 이야기'엔 담배 피우는 조선인이 단골이다. "대한제국 남자들이 얼마나 골초인가 하면 그들이 50여 년 일생 동안 피우는 담배연기만으로도 베를린 국립보건소 인원 전체를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게 할 만하다." "남자들은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음악 연주를 듣는 게 고작이다." "긴 담뱃대를 안 가진 남자를 보기는 무척 힘들고 먹거나 잘 때를 제외하곤 입에서 담뱃대가 떨어지는 것을 보기 힘들다."

세월은 흘렀지만 담배 소비는 여전하다. 특히 청소년 흡연은 위험수위다. 성인 흡연율은 떨어지나 청소년은 반대다. 청소년 흡연은 장소 불문이 됐다.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던 모습이 아예 교실 복도, 운동장 등으로 확대됐다. 여성가족부가 23일 청소년 대상 불법 담배 판매 근절을 위해 한국청소년보호연맹 및 유통업체와 협약을 체결했다. 과연 이런다고 청소년 흡연이 줄까.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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