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변두리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드나드는 버스도 888번 하나뿐이지요.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아예 뒷구석 자리 하나 차지하고서 느긋하게 눈감고 기다려야 합니다. 잠들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버스가 크렁크렁 쏟아내던 숨을 멈추고 서면 기사 아저씨가 "종점입니다. 일어나세요"하고 친절하게 깨워 주시니까요.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맨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버스 종점에서 올려다보면 엎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워 보이지만 골목이 워낙 거미줄처럼 얽힌 미로(迷路)여서 IQ가 120 정도는 되어야 서너 번 만에 찾아올 수 있답니다.
우리 삼촌은 우리 집 다락방을 차지하고 삽니다. 동굴처럼 낮에도 어두컴컴한 곳이지요. 삼촌은 서른여섯 살 노총각에다 백수입니다. 취업 전선에서 오랫동안 전투를 벌이다가 패잔병이 되어 오갈 데 없게 되었을 때,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이 방으로 흘러들어왔지요.
늘 낙방만 거듭한 취직 시험을 준비하면서 고달픈 세월을 살아내느라 그 싱싱하던 몸도 마음도 삭아내려 지금은 아이를 서넛 둔 홀아비같이 땟국이 쫄쫄 흐르는 몰골이지만, 유난히도 눈빛이 총총했던 삼촌은 어려서부터 마을 사람들의 칭찬과 기대의 말씀들을 혼자 받아먹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삼촌이 그 유명하다는 S대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였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은 대학 문앞에도 못 가봤지만 집안을 일으킬 기둥으로 삼촌을 지목하고 식구들의 입성까지 줄여가며 정성껏 뒷바라지를 했답니다. 그러나 삼촌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10년 가까이, 한 해, 또 한 해…무릎을 꺾는 안타까운 소식만 전해 오다가 결국은 작년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취업 전선에서 두 손 들고 투항한 셈이지요.
다락방에서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삼촌에게 지난 3월 중순 무렵,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꽃샘추위가 유난하던 그날, 찾아온 친구 분이 삼촌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다던 천하의 수재가 이게 무슨 꼴인가? 우리는 자네가 앞장서서 큰 깃발을 흔들 줄 알았네. 그런데 이 다락방에서 무슨 청승인가? 할 일 하나 허락받지 못하는 이 젊음이 정말 억울하지도 않은가. 그래서 내 이번 19대 국회의원 선거전에 이 지역에서 출마하기로 했네. 공부 깊은 자네가 나설 자리이지만 원래 정치판은 나처럼 좀 무식하고 저돌적인 놈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 우리 함께 짱돌을 들고 앞장서서 이 시대와 한판 붙어보세. 우리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장난감 총이라도 들이대고 협박을 해 보세. 자네가 도와주게.
그날 친구를 따라 나간 삼촌은 투표일까지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개표 방송까지 끝난 그 이튿날 저녁 무렵, 풍차를 향해 돌진하다 나가떨어진 돈키호테의 표정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으로 들어가더니 내리 사흘 동안 잠만 잤습니다. 보나마나 친구가 선거에서 떨어졌겠지요. 개표 방송 때 얼굴 한 번 비친 적이 없었으니까요. 나흘째 되는 날 부스스 일어나 앉은 삼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처량한 백수 신세로 돌아갔습니다.
삼촌과 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은 정반대입니다. 삼촌은 매일 아버지가 퇴근해 오시기 30분 전쯤에 출근을 합니다. 운동화 끈을 바짝 졸라매고 골목길에 내리는 땅거미 속으로 사라집니다. 곧 저녁 식사시간인데 어디 가느냐고 내가 물으면 씨익 웃기만 합니다.
그저께 다락방에서 삼촌 수첩을 훔쳐보았습니다.
-4월 18일. 거리에 침 뱉고도 벌금 내지 않아 10만원 수입/ -4월 19일. 24시 코너에서 밤새 근무하고 일당 3만원 수입/-4월 20일. 골목길에 오줌 누고도 들키지 않아 또 10만원 수입/ -4월 21일. 밤하늘의 별보고 욕하고도 하느님에게 붙잡히지 않음.
삼촌의 돈벌이 내역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셈이 맞지 않고 아리송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까닭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이 정말 나라를 잘 이끌어서 삼촌 같은 젊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야 노총각 우리 삼촌도 그간 쌓은 공부에 걸맞은 직장을 잡아 가슴 펴고 출퇴근하며, 또 늦게나마 빨리 장가가서 예쁜 숙모와 알콩달콩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삼촌 방 작은 들창문을 여니 싸늘한 밤바람과 함께 은하수처럼 찬란한 시가지 불빛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거리 어딘가에서, 시퍼런 청춘의 날밤을 헐값으로 써 없애며 애쓰다가 내일 새벽이면 또 이 변두리 다락방까지 밀려와 시위잠을 자고 있을, 우리 백수 삼촌이 헤매고 있겠지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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