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알면서도 못 바꾸는 응급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

지난 2010년 11월 21일 발생한 4세 여아 장중첩증 환자의 사망사건과 2011년 1월 1일 발생한 뇌출혈 환자의 병원 간 떠넘기기 문제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지 1년여 만에 이들 문제의 실체를 분석한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대구시가 충남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작성된 이번 보고서에는 앞서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함께 대구시 응급의료체계의 실태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 결과 두 건의 사고는 환자가 거쳐간 모든 병원에서 법규를 위반한 대구시내 관련 병원들의 합작품으로 발생한 사고이며, 병원의 비상 당직체계 가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사건 초기부터 의료계에서 제기했던 의혹에 대한 실체도 밝혔다. 보고서는 '대구 사건의 의학적 관점의 실체'를 통해 우선 장중첩증 환아 사망사건의 경우, '적기에 치료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한 점은 인정되지만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의료사고의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의학적 진실보다는 여러 병원을 전전한 것을 사망의 원인으로 언론에서 여론을 형성했다'고 밝혔다. 또 뇌출혈 환자의 경우, '적기에 치료받지 못해 상태가 악화됐다고 하지만 최종 진단명은 선천성 기형인 '뇌동정맥기형에 의한 뇌출혈'로 파악됐다. 이로 인한 뇌출혈과 수술지연, 환자의 상태와의 인과관계에서 환자의 현 상태가 전적으로 수술지연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의학적 실체에도 불구,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진료권이 침해됐고, 의료인의 응급환자 진료 거부, 이송시 의무사항 및 의료기관의 1339에 대한 정보 제공,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 역할 미비 등은 문제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장중첩 여아 사망사건 직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의료사고 개연성에 대해 의혹을 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여론몰이의 거센 공세 속에 죽음의 의학적 실체를 밝히는 일은 묻혔고, '어떻게 그럴수가'라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관련 단체들끼리 책임 공방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이전투구'가 따로 없었다.

의학적 실체는 제쳐두고라도 왜 이렇게 유독 대구에서만 문제가 불거졌을까하는 의문은 남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의료기관끼리 환자를 떠넘기는 행위 때문에 응급환자가 숨지는 일이 여기서만 생긴 것도 아니고, 처음도 아닌데 왜 대구만 뭇매를 맞는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이것 역시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것을 밝혀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구만 '당했다'고 억울해 할 필요도 없다. 어찌 됐건 환자 가족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찜찜하고 답답하다.

갖은 욕을 다 먹고, 징계 받고 불이익까지 받았으면 달라져야 한다. 이른바 '지역 응급의료체계의 획기적 개선'이다. 쉽게 말해서 응급실을 응급실답게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형병원 응급실은 '대기실'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응급실을 어떻게 바꿔야 효율적인지에 대해 정말 놀랍게도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일년 내내 응급실에 한 번 내려와보지 않는 의사도 알고 있고, 담당 교수의 질책이 무서워 전화조차 못하는 인턴이나 레지던트도 알고 있으며, 약을 타거나 입원실을 쉽게 받으려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얌체 환자도 알고 있다. 그렇게 잘 아는데도 안 바뀐다. 이유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내가 아니고 네가 바뀌어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못 바꾸기 때문에 더 절망적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