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느지막이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연사흘을 이어지던 봄비가 그치고 햇살이 눈부시다. 세상이 온통 초록빛으로 갈아입고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것 같다.
오늘처럼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날이면 마음까지 덩달아 시려 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이승에서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져서이다.
그러니까 몇 해 전이었던가. 당신께서 돌아가시고 난 얼마 후, 외사촌 누이가 찾아와서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동생아, 지금은 잘 모른다. 세월이 흘러 봐라. 그제야 실감이 날 거다."
'그래―. 정말 그럴까?'
그때 나는 누이의 말에 믿음 반 의심 반이었다.
그러고서 삼 년여가 흘러갔다.
누이의 말이 과연 옳았다. 아침상에 어머니가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배추쌈이라도 올라오면 금세 목이 메어 왔고, 시장길 모퉁이를 지나치다 껍질땅콩이 눈에 띄면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손수 농사지은 껍질땅콩을 손수레에 싣고 애면글면 시장바닥을 누비고 다니시던 생전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망막에 맺혀 오기 때문이다.
굵직굵직했던 지난일은 세월이 흐르면서 뇌리에서 차츰 잊히어 가는데, 자질구레한 사연들은 어찌하여 겨울 들판 같은 내 빈 가슴을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이 적시는 것일까. 꼭 한 번만이라도 지난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 생전에 못다 한 효도를 반 푼어치나마 해 볼 수 있으련만…….
영사기의 필름은 언제든 되돌릴 수가 있어도, 한 번 흘러가 버린 세월의 필름은 두 번 다시 되돌릴 수가 없구나. 허파꽈리에 공기를 채우듯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채운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내로 애옥살이 시골 살림을 애면글면 이어 오다 제대로 내 날이다 싶은 영화 한번 누려 보지 못하고 우리 형제들 곁을 떠나신 지 어언간 이십 년, 지금 살아 계신다면 일흔을 훌쩍 넘기셨을 어머니.
삶의 무게를 외투처럼 걸치고 한껏 처진 어깨로 현관문을 들어서는 불초한 아들에게
"애비야, 이제 오냐. 많이 시장하지?"
하며 반겨 맞아주시던 어머니의 그 다감하면서도 안쓰럽던 모습이 상금 눈앞에 불쑥 나타날 것만 같다.
아! 불러도, 불러도 다시 또 불러 보고 싶은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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