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은 제49회 '법의 날'이다. 필자는 약 20년간 재판 업무에 종사해 왔는데 '법의 날'을 맞아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느낀 점을 두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첫째, 서류 작성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재판을 하다 보면 증거라고는 당사자의 말밖에 없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말이란 것이 원래 불확실하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 의미가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자기 말이 맞다고 확신하는 원고는 '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아는데 설마 내가 질 리야 있겠느냐'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이런 사건을 맡은 필자의 경우 원고 말을 들으면 원고 말이 맞는 것 같고 피고 말을 들으면 피고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늘에 물어볼 수도 없어 난감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입증 책임 이론을 동원해 입증해야 하는 사람이 입증하지 못할 경우 그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증거는 부족하지만 실제로는 원고의 말이 맞을 경우 원고로서는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러니 계약서나 차용증, 영수증 등 증거서류를 반드시 마련해 두어야 한다. 돈을 빌려 주면서 차용증을 적어 달라고 요구하지 못할 사이라면 소송을 해도 비관적이다. 왜냐하면 피고가 법정에서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순간 원고가 패소할 가능성이 많아지고 그렇게 될 경우 그야말로 원고는 돈도 잃고 사람도 잃게 된다.
둘째, 조정'화해 절차의 유용성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모든 제도에는 일장일단이 있듯이 조정'화해제도는 장점이 많지만 단점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소송이란 것을 소송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하는 해답을 내기보다는 당사자 모두의 공동이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때 당사자들에게 조정'화해를 권유할 필요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필자가 경험한 가장 안타까운 조정사례 중 하나는 사연이 이렇다. 판결을 하면 원고가 패소할 사안에서 여러 정황을 고려해 필자가 피고로 하여금 원고에게 적지 않은 돈을 지급하는 조정안을 제시한다. 이에 피고는 이를 받아들였는데, 원고가 이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결과 결국 판결절차로 넘어가 원고패소 판결이 선고되고 상급심에서 그대로 확정된 경우를 들 수 있다.
조정'화해 절차에서 판사가 제시하는 조정'화해안은 가능한 한 믿고 따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물론 판결로 하면 자기에게 좀 더 유리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가능성일 뿐이다. 그리고 판결절차를 선택한 결과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심, 2심, 3심 각 심급마다 보수를 지급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3심까지 갈 경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재판기간도 매우 길어진다.
그리고 송사에서 빨리 벗어나 생업에 복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혜택, 즉 송사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송사 때문에 마음고생을 넘어 몸까지 상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아 왔고, 심지어는 재판 도중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보았다.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 했다. 조정'화해에 적극 응하는 것이 조금 잃고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
조정'화해에 응한다고 해서 재물을 잃는 것도 아니다. 설혹 조정'화해 결과 재산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내가 상대방에게 그만큼 양보하였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척을 지지 않는 방법이 바로 조정'화해에 적극 응하는 것이다.
소송을 통해 경제적 파탄은 물론 상대방과의 인간관계마저 극도로 파괴돼 원수지간이 되는 것을 일컬어 '척을 진다'라고 표현한다. 1심, 2심, 3심 끝까지 가다 보면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쌍방 간에 척을 지게 되는 것이다.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음은 다언을 요하지 않으리라. '아무리 좋은 판결도 나쁜 화해보다는 못하다'라는 법언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강동명(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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