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연지(가명)가 계속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명주(가명'31) 씨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연지는 엄마를 찾으며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19개월 된 연지는 또래 아이들보다 팔다리가 짧다. 머리 둘레도 53㎝나 된다. 연지는 2009년 '연골무형성증'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선천적으로 작은 키를 유발하는 질환으로 염색체 이상으로 발생하는 유전적 장애다.
◆딸의 병
24일 오전 9시 대구역, 명주 씨는 부산행 무궁화호를 놓쳤다. 이날은 6개월에 한 번 양산 부산대병원 유전대사 클리닉에 가는 날이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대구역으로 간 뒤 기차를 타고 구포역으로 가서 부산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한 뒤 병원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꼭 그의 삶 같았다.
명주 씨가 딸의 병을 의심한 것은 임신한 지 일곱 달이 됐을 때였다. 초음파 사진 속에 보이는 딸의 모습은 팔다리가 유난히 짧았다. 명주 씨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제왕절개 수술을 해 임신 37주 만에 낳은 딸은 팔다리가 짧고 몸에 비해 머리가 컸다. 연지가 신생아실에 입원해 있을 때 병원에서는 '다운증후군'을 의심하고 염색체 검사를 했지만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터넷에 딸 아이의 증상을 검색하니까 '연골무형성증'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염색체 검사를 한 건데…." 연지는 그렇게 병원에서 연골무형성증 진단을 받았다.
◆어른이 돼도 120㎝
딸의 병은 낯선 이름만큼이나 다루기 힘든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은 모두 팔다리가 짧고 머리가 큰 것이 특징이다. 지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여자의 경우 성인이 돼도 신장이 최대 120㎝를 넘지 못한다. 아이의 성장 속도도 더뎠다. 연지는 생후 6개월 만에 스스로 목을 가누는 법을 익혔다. "연지가 누워서 목을 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내 딸이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하는지 알았거든요."
생후 19개월인 연지는 아직도 엄마 품에 안겨서 세상을 둘러본다. 다리에 힘이 없어 벽을 잡지 않고는 혼자서 걸을 수 없다. 다리를 지탱하는 보조기를 사용하고 싶어도 300만원 넘는 돈이 든다고 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연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공원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그때 가슴이 제일 아파요."
무거운 머리도 문제다. 머리뼈가 척수 신경을 자꾸 눌러 아이의 호흡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어서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 항상 목 보조기를 착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음 달에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머리 수술을 받기로 했지만 병원비가 무서워 계속 망설이고 있다.
◆아빠가 없는 아이들
연지는 아빠가 없다. 그래서 명주 씨는 딸에게 '아빠'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첫째 준수(가명'9)도 지난해까지는 아빠를 찾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빠의 존재를 묻지 않는다.
연지와 진수는 아빠가 다르다. 명주 씨는 22살 때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남자의 외도 때문에 결혼 1년 만에 이혼 도장을 찍어야 했다. 외롭게 준수를 키우고 있을 무렵 그에게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 결혼을 약속하고 임신까지 했지만 그 남자는 딸의 장애 사실을 알고 난 뒤 소리 없이 사라졌다. 명주 씨는 그 뒤 아이들의 성을 '이' 씨로 바꿨다.
준수는 학교 친구들에게 아빠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작은 키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데 아빠가 없는 사실을 알면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돼서다. 준수는 성장호르몬결핍증 진단을 받아 호르몬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지만 한 달에 50만원 가까이 드는 치료비가 부담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30대 엄마가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장애가 있는 연지를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없어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명주 씨의 어머니는 2009년 폐암 진단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돼 육아를 도와줄 형편이 안 된다. 다행히 2009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100만원 남짓한 생계급여로 세 식구가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임대주택에 사는 명주 씨는 월세 11만원이 석 달째 밀려 있다. 최근에 연지가 거대세포바이러스에 감염돼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썼기 때문이다.
명주 씨는 미래가 걱정된다. 학교에 가면 또래보다 유난히 키가 작은 연지를 친구들이 따돌리지는 않을지, 연지가 남과 다른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상처받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지가 다른 사람보다 키가 작다고 꿈도 작아져 버릴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꿈과 키가 비례하는 것은 아닌데."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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