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삼력의 시네마 이야기] '1인 멀티플레이어 양성'불편한 진실

최근 영상 관련 대학이나 교육기관들에서 강조하고 있는 교육목표를 살펴 보면 '1인 멀티플레이어 양성', '통섭 인재 양성' 등의 문구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학생 본인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최고의 교육이 되겠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에 가까운 이야기다. 연출, 촬영, 편집, 기획 등 해당 매체의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마 해당 직종에 종사해온 인력이 본다면 실소를 금하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위에 나열된 분야 중 한 파트에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거나 두각을 나타내는 데만 적어도 1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양학부'로 전락한 대학이나 단기간 교육을 진행하는 아카데미 등이 이를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

물론 이 모두를 학습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필자의 경우 실제로 위 모든 분야의 영화작품 경력이 있고 심지어 광고공모전과 방송다큐멘터리 공모전에서 입상한 경력도 있다. 다만 진실로 고백하건대 이는 성장 과정에서 아마추어로서 진로에 대해 탐색하거나 고민하던 과정의 일환이지 본인이 다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나마 두각을 나타낸 분야 역시 연출 정도일 뿐이다. 오히려 한 분야에 집중해서 공부를 계속했다면 그래도 본인의 분야에서만큼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지금도 하고 있다.

고도산업화의 안정기에 접어든 현대사회에서 '융합'이나 '통섭'을 강조하는 시대의 요구는 보편타당한 것일지라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느 한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인력은 다른 분야를 겸하더라도 빛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관련 분야의 인사 담당자라면 그런 인력을 필요로 하겠는가? 관련 산업의 침체국면에서 시행되는 단기간의 인건비 절감방안인 '저비용 고효율' 정책 이후에는 도태될 인력이다.

한편으로는 소위 '스펙' 사회가 만든 허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의 천편일률적인 인재에 대한 채용방식이 영상 관련 분야에도 영향을 주어 창의력이 필요한 교육에 '붕어빵'과 같은 인력의 양성을 강요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갑자기 예전에 필자가 대학교원이 되기 위해 각 대학의 공채자료를 살펴보던 중 경악을 금치 못했던 공고가 떠오른다. 채용에 필요한 경력으로 '실기지도 분야에 뛰어난 업적이 있으면서 관련 학회 등재지 등 논문의 수가 많고 영어강의가 가능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였는데 당시 그런 사람은 국내에 1명도 없었고 해당 대학은 필요한 교수를 뽑지 못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는 필요하지만, 그 전략이 허황된 것이라면 원점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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