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봄비에 젖은-길상호

약이다

어여 받아먹어라

봄은

한 방울씩

눈물을 떠먹였지

차갑기도 한 것이

뜨겁기까지 해서

동백꽃 입술은

쉽게 부르텄지

꽃이 흘린 한 모금

덥석 입에 물고

방울새도

삐! 르르르르르

목젖만 굴러댔지

틈새마다

얼음이 풀린 담장처럼

나는 기우뚱

너에게

기대고 싶어졌지

삶의 고단함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따스하게 읽어내는 길상호 시인의 작품입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봄비를 약이라 하니, 천지의 온갖 것들이 살아나는 게 바로 이 때문이었나 쉽네요.

아직 겨울이 다 끝나지 않아 차가우면서, 또 겨우내 단단하기만 하던 얼음을 녹여내어 뜨거운 눈물 같은 봄비. 이러니 동백꽃 입술은 부르트듯이 벌어지고, 방울새도 겨우내 닫힌 목소리를 열 수밖에요.

이럴 때면 세상의 모든 경계심도 풀리어, 얼음 풀린 담장이 기울 듯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겠지요. 그 중에 축대 무너지듯이 내려앉는 크나큰 그리움은 또 얼마나 될까요.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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