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면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는 새해맞이 TV쇼 '딕클락스 뉴 이어스 로킹 이브'가 열린다. 이 쇼에는 일본 NHK에서 방송되는 '홍백가합전'처럼 한 해 동안 활동한 최고 엔터테이너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팝계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화려하며 의미 있는 이 쇼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은 1950년대부터 DJ와 TV 진행자로 이름을 높인 딕 클락(Dick Clark)이다.
딕 클락은 미국에서 영원한 아이돌로 불린다. 10대들이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층으로 등장한 1950년대를 선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로큰롤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데, DJ와 로큰롤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앨런 프리드(Alan Freed)와 함께 당대의 대중문화를 선도했고, 페이올라 사건(1950년대 금품 등을 제공받고 방송에서 음악을 틀어주던 불법 행위)으로 앨런 프리드가 떠난 자리에서 팝계를 대표하기도 했다.
딕 클락은 원래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스타 가수를 꿈꿨다. 일찌감치 연예계에 입문했지만 노래 솜씨가 신통치 않아서 전혀 주목받지 못한다.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대학에서 광고와 라디오 제작을 공부하는 동안 여전히 팝무대가 자신의 영역이라는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라디오 방송에서 우편물을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기회를 살폈는데 방송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진행자를 대신해서 마이크를 잡게 된다.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은 딕 클락은 대단한 입담을 선보이면서 순식간에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게 된다.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라디오쇼를 진행하며 단 4주 만에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을 만든 후 LA로 무대를 옮겨 1980년대 후반까지 최고의 쇼였던 '아메리칸 밴드 스캔드'(1957~1987)를 진행한다.
1973년 딕 클락은 가수로 무대에 서는 자신의 꿈을 뛰어넘는 성과를 만든다. 지금까지 그래미와 필적할 최고의 시상식으로 평가받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제작한다. 지나치게 대중성을 중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팝계를 상징하는 시상식으로 자리했고 이 공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버디 홀리를 시작으로 마돈나까지 팝팬들에게 소개한 딕 클락이 이달 18일(현지시간)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로큰롤의 탄생과 영광을 함께했던 영원한 아이돌의 영면을 안타까워하는 팬들은 할리우드 워크 오브 페임에 새겨진 딕 클락의 이름 앞에 모였다. 팬들에게 로큰롤은 그들의 시대를 규정하는 가치였고 시대를 초월하는 로큰롤의 아이콘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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