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穀雨'4월 20일)에 비가 내리면 백곡이 윤택해진다"는 옛말이 있다. 곡우를 전후해 전국에 봄비가 내렸다. 곡우가 지나면 농부들이 겨우내 보관해 두었던 볍씨를 내어 못자리를 만든다. 옛날에는 이즈음엔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곡우는 봄의 정취를 빼앗아갔다. 강풍과 많은 비가 연약한 봄 꽃잎들을 꽃비처럼 날려버렸다. 지난주만 해도 직지사 입구에는 봄의 대명사인 벚꽃을 비롯해 개나리, 목련 등이 활짝 펴 상춘객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그런데 한순간에 꽃들이 자취를 감췄다. 아름다운 것은 자고로 오래 가지 않는 법,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봄비가 그치자 낮 기온도 최고 30℃까지 올랐다.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이다. 봄비로 한껏 물을 머금은 산천의 수목이 제 빛을 낸다. 참나무 등 활엽수에 돋아난 새 잎으로 온 산이 연초록색으로 물들고 있다. 녹음방초(綠陰芳草), 초록의 향연(饗宴)이 펼쳐지고 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조형미가 빼어난 명적암(明寂庵)
직지사 산내 암자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명적암이다. 명적암은 구한말 선비 송병선이 쓴 '황악산기'(黃岳山記)에도 등장하는 직지사의 대표적인 암자다. 경내를 벗어나 등산로를 따라 1㎞ 정도 오르면 내원교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보궁명적암'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왼쪽으로 잘 포장된 길로 접어들면 명적암이 보인다. 암자를 세운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다시 중수됐으나 근래에 화재로 소실됐다. 1998년 녹원 조실 스님이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갈대와 소나무로 우거진 잘 다듬어진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덩그러니 자리한 서학루(棲鶴樓)를 만난다. 학이 깃들어 산다는 뜻이다. 웅장하게 솟은 서학루에 오르면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산 아래로 멀리 김천시가지가 한눈에 보이고 암자를 두고 산이 겹겹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풍수에 문외한이 보아도 좋은 터임을 알 수 있다. 서학루는 화정루(和靖樓)라고도 불린다. 전각 천장에는 학 여러 마리가 날갯짓을 하는 모습 등 정갈하게 꾸며져 탄성이 나온다. 경내에 들어서면 마당 가운데 조성 방식이 다소 특이한 삼층석탑이 있다. 석탑 앞에는 머리에 원통형 보관을 쓰고 탑을 향해 공양하는 형상을 한 공양보살석조상이 있다. 이는 보물 제87호인 강릉 신복사지(神福寺址) 삼층석탑의 형식을 빌려서 조성했다. 법당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지장'보현'문수'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좌우로 '향경다실'(香經茶室)과 '월명산가'(月明産家) 현판을 단 전각이 있고 월명산가 뒤편으로 요사체인 육화로(六和寮)가 있다. 현판과 주련의 초서체로 잘 쓰여진 글씨는 중국 서예가 마소(馬蕭) 선생의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다. 장명 스님은 "조실 스님께서 명적암 불사를 하면서 주변 조경을 위해 트럭 3천 대분의 흙과 소나무 108그루를 옮겨 심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며 "누정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면 불어오는 바람과 주위 풍광에 빠져 신선이 된 느낌"이라고 자랑했다.
◆지금은 사라진 직지사 암자를 대표하는 능여암(能如菴)
명적암 주차장 끝에서 능여계곡 쪽으로 새롭게 난 길을 따라 2㎞ 정도 오르면 주변이 잘 정비된 절터를 만난다. 능여암 터이다. 능여암은 직지사의 실질적인 창건주로 알려진 능여대사가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해 직지사 주지인 능여를 몰래 찾아와 구원을 요청한 곳이다. 능여 스님은 짚신 3천 켤레를 삼도록 해 이를 들판에 흩어 놓아 견훤의 군졸들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며 대오를 흩트리는 틈을 타 왕건이 개경까지 무사히 돌아가게 된다. 후일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은혜의 보답으로 전답 1천 결을 주어 직지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하지만 능여암 창건 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잇단 화재로 없어져 전하지 않아 안타깝다.
절터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깨어진 기와 파편과 반쯤 묻혀 있는 맷돌이 눈인사를 한다. 법당 자리에는 자연석으로 대충 다듬은 주춧돌이 흩어져 있어 이곳에 'ㄱ' 자 형태의 암자가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자연스럽게 3단 석축이 쌓여 있어 당시에도 여러 채의 전각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계곡 쪽으로 담장과 마주하고 수령을 알 수 없는 감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장명 스님은 "능여조사의 숨결이 닿은 이곳을 발굴'복원해야 하지만 사료나 유물 등이 사라지고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며 "직지사에는 능여암을 비롯해 내원암 등 30여 암자가 있었다고 사적기에 전하지만 자주 불이 나고 절이 흥망을 거듭하면서 사료가 충분치 않아 사라진 암자 터에 대한 고증마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조실 스님이 앞장서 최근에 겨우 7개 암자를 중건했으나 모자람이 많으며 옛 가람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자의 이력이 다른 삼성암(三聖菴)
삼성암은 직지사 암자에 포함되지만 절의 위치와 내력은 다른 암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삼성암은 산 능선을 넘어서 외따로 자리해 있고, 창건 연대도 확연하게 앞서 내력이 깊다.
직지사 입구 '먹거리 타운'이 끝나는 삼거리에서 들모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참을 가면 바람재 이정표가 있다. 이어 화실마을로 가는 내리막길이 있는데 마을 입구로 들어 꼬불꼬불한 길을 4㎞ 올라가면 삼성암에 닿는다. 암자에 들어서니 이곳은 이제 봄꽃들이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해발 800m로 아직 찬 기운이 완연한 탓이다. 요사체 앞에는 살구나무가 이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살구나무 모습이 좀 이상하다. 나무 속이 비어 있고 반쯤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하다. 수십 년 전 화재 때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죽지 않고 이듬해 새잎이 돋았다는 것. 그런데 성치 않은 나무에 달린 살구가 더욱 맛이 좋다는 설명이다.
삼성암은 구전에 신라말 고승인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도선 스님이 지리산의 약사여래 삼불(三佛)을 모셔오기 위해 지었다. 스님이 아도화상이 창건한 직지사를 찾아 주변을 둘러본 뒤 금오산 약사암, 불영산 수도암, 이곳 천덕산 삼성암에 터를 잡고 약사여래를 함께 봉안했다. 이후 직지사를 비롯한 인근 암자들이 임진왜란, 한국전쟁 때 불에 타는 피해를 당했으나 삼성암은 온전히 보존돼 오다가 1985년 큰 화재를 만나 약사전, 삼성각 등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됐다. 이를 주지 보륜 스님이 중건에 나서 예전 가람의 모습을 되찾았다.
경내로 들어서자 먼저 용왕탱을 모신 '용궁'이라는 전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용왕각은 통상 큰 법당 뒤편에 있는데 절 입구에 있어 파격적이다. 용궁 앞에는 수령 400년 된 아름드리 보리수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용왕각 뒤로 돌아가면 연화 문양을 새긴 디딤돌이 자연스레 약사보전으로 인도한다. 법당 안에는 약사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또 옆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자리해 있다.
그런데 중앙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의 왼손은 마치 붕대가 감긴 듯하다. 원래 부처 손에는 약사여래불을 상징하는 약함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훔쳐갔다고 한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다음에 들어온 우매한 도둑은 부처의 몸에 약함이 없자 손에 감추고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훔칠 요량으로 불신(佛身)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훼손된 부분을 보수했으나 아직도 흉한 모습이 남아 있다. 이런 까닭으로 약사여래불은 약함이 없는 빈손이다. 도난 방지를 위해 약함은 법당 천장에 매달아 두었다. 불사를 조성하면서 100여 가지의 약초로 환을 만들어 약함에 넣어 천장에 매달아 두는 꾀를 냈다고 한다.
또한 삼성암 법당을 둘러보면 법당 뒷부분 서까래 하나가 단청을 하지 않은 맨 모습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이곳의 나이 많은 불자들이 소실된 절을 새로 지으면서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짓고 단청을 마치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주지 스님이 "단청을 마무리하지 않고 서까래 하나를 남겨둬 불자들의 염원이 오래도록 계속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법당 벽화에는 삼성암의 조성 경위와 화재로 소실되고 이를 다시 세웠던 암자의 내력을 그려 놓아 나름 의미를 전하고 있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 작가 texca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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