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환한 벚꽃길이다. (나에게는) 잔인한 4월이다."
4'11 총선에서 당당한 주역으로 뛰지 못하고 남의 선거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17, 18대 8년 간의 국회의원 활동을 마무리하고 '야인'으로 돌아가게 된 주성영 의원으로서는 선거가 끝나고 맞는 4월이 참 잔인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새누리당 간사를 맡아 야당 측과 막판까지 힘겨운 선거구획정 다툼을 하고 있던 와중에 터진 성매매 의혹에 대한 진정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소환을 통보하자 전격적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구시당위원장으로서 대구지역 선거 지원에 나섰던 지난 두 달여 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자에게는 "마음을 비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공부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더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3선 고지 바로 앞에서 던져진 검찰 소환장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지난 2월 23일자 소인이 찍힌 대구지검의 소환장을 보관하고 있었다. '익일특급'으로 도착한 검찰 소환장은 주 의원의 정치적 운명을 갈랐다.
2010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사법개혁안을 처리하면서 검찰로부터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인 자신이 검찰 개혁안을 밀어붙이자 검찰 지도부에서 주 의원을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진정사건으로까지 번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민감한 성매매 진정사건에 대한 진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당당하게 검찰 소환에 응해서 결백을 입증하지 않고 불출마를 선택했을까?
"국회 회기 중에 검찰이 진정사건 같은 건으로 국회의원을 소환한 적이 없다. 명백히 나와 새누리당에 대해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라고 판단했다. 그 당시 새누리당은 100석을 넘기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19대 국회에서도 공직수사처 설치 등의 검찰 개혁안을 밀어붙이게 될 경우, 검찰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검찰이 내심 원했던 것도 자신의 불출마였을 것이라고 했다.
주 의원으로서는 성매매가 있었느냐 아니냐는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에 정치적 부담을 주는 것보다는 자신의 불출마를 통해 정리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매매는 한 적이 없으며 소문이 허무맹랑한 것으로 밝혀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교수인 부인이 마음 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소문이 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데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오히려 '제일 힘든 것이 당신일 것'이라며 나보고 힘내라고 하더라"고 가족의 이해와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도 전했다.
주 의원은 질풍노도처럼 달려온 국회의원 활동을 접고 이번 주말 대구에서 그간의 의정활동을 정리한 '8년간의 여정' 출판기념회와 '중소기업 법률지원센터' 개소식을 함께 연다. 15년간 검사로 살아 온 인생 1막과 국회의원으로서 지낸 2막을 지나 이제 막 제3막의 첫장을 여는 셈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할 중소기업 법률지원센터에 대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의 입법 경험과 변호사로서의 법률적 지식 등을 한데 엮어 지역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나 스스로도 중소기업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지원센터 설립에 대해서는 유승민 의원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데다 주 의원의 법률지원센터 설립 소식을 보고받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정말 훌륭한 생각"이라며 격려 영상을 만들어 개소식에 보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판사, 검사 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하면 사실 '전관 예우'를 받을 수 있는 소송사건은 할 수 있겠지만 인적 네트워크가 전무하다. 나는 국회의원 8년을 하면서 대구에서는 웬만한 기업인들을 알고 있는데다 국회의원으로서 중소기업 관련 입법문제는 물론이고 대구시의회의 조례 개정 등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이해하고 있다. 관련 법안과 조례에 대한 해석 등 중재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 법률지원센터에는 2명의 변호사 외에 유 의원과 문신자 전 대구여성단체협의회장 등 정치권 인사가 고문을 맡고 김희국(중남구), 김상훈(서구), 권은희(북갑), 홍지만(달서갑), 윤재옥(달서을) 등 5명의 대구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는 "(불출마 선언을 한 후) 처음에는 많이 괴롭고 쓸쓸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가슴이 설레는 심정"이라고 했다.
4'11 총선 지원에 이은 주 의원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지역 정치권에서는 그가 차기 대구시장에 출마할 생각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다음 총선 출마설은 기본이다.
이와 관련, 그는 '정치인, 주성영은 살아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나에게 순리대로 오면 거절하지 않지만 나로부터 떠났으면 쫓아가지는 않는다'(물순래이물거 물기거이물추'物順來而勿拒 物棄去而勿追)는 것이 정치인 주성영의 좌우명이라고도 소개했다. 지금은 국회의원 직이 자신을 떠났기 때문에 미련을 갖지 않고 깨끗하게 물러설 때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국정 체질이지 시정 체질은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대구시장 선거에 나갈 일은 없으며 정치를 재개한다면 국회의원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총선 후 논란거리가 된 바 있는 박근혜 위원장의 소통 부재와 친박계 내부의 갈등 양상에 대한 그의 입장도 물었다.
그는 국회 정개특위 간사로서 또 이전의 사법개혁특위 간사로서 각종 민감한 현안에 대해 보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소통이 안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으며, 문제가 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며 박 위원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주 의원 역시 어쩔 수 없는 '친박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새로운 이슈에 접하게 될 때 박 위원장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소통이 어렵다는 일부 친박계 인사들의 지적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듯이 민주당의 한명숙 전 대표보다는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대선은 개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진입시키는 새로운 역사의 도구로 박근혜를 선택하는 것"이라면서 "선진국의 핵심은 자동차와 선박 1위, IT강국같은 그런 지수가 아니라 신뢰와 원칙이 지켜지고 인간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사회"라고 강조했다. "거기에 근접하는 지도자가 박근혜"라면서 박 위원장에 대한 애정을 거듭 확인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으로서 포스트 박근혜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전무하다시피하다는 지적에도 공감했다. 그의 말은 거침 없이 이어졌다.
"고(故) 김윤환 전 의원 이후 대구경북 정치권에서 정치적 역량을 가진 중량감있는 정치인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번 공천은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낙제점에 가깝다. 이는 지역 정치권의 주류인 새누리당이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번 공천은 다른 면에서 지난 공천자에 비해 전체적으로 나은 면도 있지만 지나치게 관료위주로 새로운 인물을 충원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19대 국회에서 대구 국회의원 중에서 정치적 포지션을 갖추고 있는 정치인이 유승민 의원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곰곰 되씹어봐야 할 문제다. 중앙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 전당대회가 끝나고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떼고 대구시당위원장 직도 내놓는다. '무관'(無冠)의 그가 대선정국에서 할 수 있는 역할과 위상은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지 못하면 대구경북은 희망이 없다"며 총선에 이어 대선에서도 박근혜 위원장 지지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는 경제민주화와 교육개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또한 청년실업과 대학교육 문제를 결부시켜서 교육개혁을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재수를 해서 들어간 성균관대를 거쳐 고려대에 편입했던 주 의원은 고려대 졸업생이다, 군대를 갔다온 후 늦깎이로 29회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로 임용돼 춘천지검을 시작으로 영천, 제주, 창원, 서울, 천안 등 전국을 섭렵하다가 대구지검에서 부장검사로 옷을 벗을 때까지 전국 곳곳에서 '유명세'를 떨친 주성영이다. 그는 스스로를 '전국구 검사'라고 했다. 자신 만큼 전국을 돌아다니며 검사를 한 사람이 없어서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때 은사가 자신을 '주성영 의원'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며 국회의원을 하라는 운명인 것 같다는 국회의원 주성영은 '여의도 풍운아'에서 이제 일반인의 신분으로 되돌아간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보다 더 성숙해 질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한 번도 겸손한 삶을 산 적이 없었는데 이제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누려온 모든 것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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