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전쟁/이철호 지음/식안연 펴냄
비교우위 경제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각 나라마다 비교우위 분야에 특화(분업)하고, 서로 무역을 하게 되면 모두가 더 잘살게 된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반도체, 조선, 스마트폰, 철강 등 경쟁우위에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이를 수출해 벌어들인 돈으로 값싼 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면 국민 전체의 효용이 높아지게 된다.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지금의 현실에서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급증하면서 세계적 곡창지대에 가뭄과 홍수가 끊이지 않고 있고, 그 빈도와 강도는 점차 강해지고 있다. 만일 지금의 곡물 수출국들이 흉년이 들어 자국민들의 먹을거리조차 부족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7~2008년 세계 곡물 파동에서 본 바와 같이 곡물수출은 제한되고, '부르는 것이 값'이 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공산품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쏟아붓고도 '배고픈' 시절이 다시 올 수도 있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해 온 미국이 더 이상 과거의 패러다임을 지속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일부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환경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운 '식량'이라는 최후의 무기를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식량 수입국이 됐고, 동물성 식품의 소비가 급증하면서 콩과 옥수수의 최대 수입국이 되어 버렸다. 중국인의 밥줄은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미국의 손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선진국들은 이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1986년 9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시작되어 1994년 4월 타결될 때까지 8년간 유럽국가들은 농산물 수입 개방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 영국과 독일은 1975년 각각 64%와 80%에 불과하던 곡물자급률을 1990년 116%와 114%로 높였다. 일본도 1980년대까지 급속히 떨어지던 곡물자급률을 1990년대 이후 30% 선을 유지하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2015년까지 45%까지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업은 산업화 수출 정책에 밀려 서자 취급을 면치 못했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정부는 농업에 145조원을 지원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보전 대책으로 10년간 54조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한국농업이 경쟁력을 되찾았다는 소식은 어디에도 없다.
IMF 외환위기 때에는 더욱 어처구니없이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종자산업을 대표했던 흥농종묘, 서울종묘, 중앙종묘, 청원종묘를 외국기업에게 팔아치웠다. 수많은 한국의 재래 원종과 유전자원들이 외국기업의 소유가 됨으로써 종자주권을 상실했다. 제주산 감귤, 완도산 김, 익산산 블루베리 등 모두 한국 농부들이 재배한 농산물이지만 2012년부터 국내 농가들은 이런 작물을 생산할 때마다 외국에 로열티를 내야 한다. 제 밥줄을 남에게 내어주고 IMF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노골화된 서방 선진국들의 식량무기화 전략을 파헤치고 개발도상국들의 어리석은 경제정책과 식량정책을 실례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또 WTO 이후 식량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광우병 쇠고기 대란을 겪었던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조명해 보고, 앞으로 세계 공영에 이바지할 한국의 세계 비전도 제시한다.
저자는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덴마크왕립수의농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MIT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고려대 교수로 초빙되었다. 2010년 30년 교수생활을 마치고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을 설립하여,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알리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국민교육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236쪽, 1만2천800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