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인공적 환경과 사람의 심성

해가 갈수록, 세대 차가 커진다. 이번 총선거에서도 이 점이 다시 확인되었다. 전에는 유권자들이 청년과 노년으로 나뉘었다. 요즈음은 10년 단위로 투표 성향이 상당히 다르다. 자연히, 세대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틈은 점점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문화가 점점 빠르게 진화하는 현상과 관련이 깊다. 새로운 환경에 어린 사람들일수록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나이에 따라 행태가 바뀌게 마련이다.

그렇게 가속되는 문화의 진화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인공적 환경의 증가다. 인공적 환경은 우리 심성엔 낯설다. 사람의 심성은 인류가 백 명 안팎의 부족을 이루어 살았던 원시 시대에 다듬어졌다. 자연히 우리는 나무와 풀이 우거졌던 당시 환경을 그리워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만나기 어렵고 인공적 환경 속에서 기기들을 다루면서 산다. 인공적 환경의 비중은 젊은 세대들에서 두드러진다. 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휴대전화나 텔레비전의 화면에서 정보들을 얻는다. 그래서 둘레의 자연적 환경에 관심이 아주 적다.

이처럼 젊은 세대들이 인공적 환경에 둘러싸였다는 사실이 세대 차를 크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한다. 예전에는 상식이었던 나무와 꽃에 대한 지식을 젊은이들이 전혀 모른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가벼운 충격과 함께 그들이 나와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인공적 환경의 점점 커지는 영향은 물론 세대 차를 늘리는 것을 훌쩍 넘는 중요한 함의들을 지녔다.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전자 게임을 하면서 자라난 젊은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자라난 사람들만큼 건강하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텔레비전이나 전자 게임 속의 세상과 실재하는 세상을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는 늘 자연을 그리워한다. 세속의 삶에 지치면, 우리는 '미친 군중'으로부터 훌쩍 떠나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어진다. 자연 속에서 지치거나 거칠어진 마음을 추스른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다. 마음이 부대낄 때 자연을 찾는 지혜를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적잖이 걱정스러워진다. 나이 든 세대에겐 늘 새로운 세대가 미덥지 못하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일러도, 어쩔 수 없이 걱정스러워진다.

자연은 우리 마음에 기준점을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지내면서, 우리는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인공적 환경 속에 너무 깊이 묻히면, 우리는 문득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과 전자 게임에 몰두한 사람들이 그런 건강한 본능을 지닐 수 있을까? 선뜻 긍정적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

인공적 환경은 자극을 극대화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큰 문제인 마약 사용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난다. 마약은 원래 식물들이 동물들을 물리치려고 만든 성분들이다. 그러나 자연에 존재하는 마약 성분들은 낮은 수준이어서, 사람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람이 그런 마약 성분을 농축할 수 있게 되자, 중독 현상이 나왔다.

이런 과정은 널리 작용한다. 자연은 높은 수준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에, 인공적 환경은 아주 높은 수준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이런 자극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은 분명히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실증적 연구가 그리 많지 않지만, 아이들이 전보다 참을성이나 책임감이 약하고 행동과 말씨가 거친 현상도 적지 않은 부분이 인공적 환경에서 연유했을 수 있다. 무슨 이유로 싸우는지 묻지 않고 화해의 가능성은 아예 배제한 채 그저 싸우고 죽이는 전자 게임을 많이 하면, 심성이 거칠게 되리라는 추론은 타당성이 있다.

사람들은 점점 많이 인공적 환경 속에서 지낼 것이다. 우리는 그런 변화에 따르는 부작용들을 줄이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감옥에서 원예를 한 죄수들의 재범률이 상당히 낮다는 통계는 이런 처방을 떠받친다. 아이들이 지겨워하는 학원에 억지로 보내는 대신, 함께 근처 야산이나 공원을 찾는 것은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 큰 보답을 받는 합리적 투자다. 산천이 고운 모습으로 우리를 부르는 봄철엔 더욱 그렇다.

물론 근본적 대책은 남은 자연을 지키고 훼손된 자연을 가능한 한도 안에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인류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은 늘 강조되어야 한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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