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한국은행 대구지점은 '2000년대를 향한 대구 지역경제 발전 방향'이란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 초점은 지역 자금의 외부(서울) 유출. 대구지점이 당시 지역 금융기관 예금액과 대출액 자료를 통해 분석한 1994년 말 기준 외부 유출액(예금액에서 대출액을 뺀 금액)은 7조원대로 나타났다.
대구지점은 "자금 유출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해 자금 환류(순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저금리 기조에 따라 자금 유출 규모가 점점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2012년 현재. 우려는 더 큰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매일신문과 대구경북연구원 분석 결과, 1월 기준 대구 외부 유출액은 21조 5천억원으로, 18년 전과 비교해 3배 넘게 폭증했다.
대구 자본의 외부 유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유는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지역 토종 자본이 몰락하고, 그 빈자리를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이 모조리 장악했기 때문이다.
대구의 돈이 서울 본사로 빨려 들어가는 악순환이 오히려 더 고착화되면서 지역경제가 파탄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몰락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금융, 건설, 유통 등 대구 실물 경제를 지탱했던 토종 자본은 철저하게 몰락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경일'대구종금, 대구'대동리스, 대동은행 등이 무더기로 퇴출됐다. 1970년대 중반 신세계 등 굴지 재벌의 대구 공략을 물리치며 지역 유통시장을 지배해 온 대구'동아 양대 백화점의 '불패(不敗) 신화' 역시 IMF 체제 이후 급격히 흔들렸다.
외지업체의 잇단 대형마트 개설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리더니 결국 대구백화점 홀로 살아남았다.
유통과 함께 지역경제의 쌍두마차 역할을 해 냈던 주택건설업 또한 IMF 여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우방, 청구, 보성 등 업계 빅3가 연이어 부도를 냈고, 지역 주요 주택건설업체 대부분이 IMF '암초'에 걸려 '좌초'했다.
◆종속
토종 자본의 몰락 이후 대구 실물경제는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에 점령당했다.
금융-지역 중소기업계에서는 대구 금융기관에서 10억원을 빌리는 일이 서울에서 100억원 이상 대출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 지원 창구 역할을 할 만한 지역 금융기관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거래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가 과다한 담보 요구의 벽에 부닥쳐 결국은 발길을 돌려야 하는 중소기업인들의 절규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유통-1997년 삼성 홈플러스를 시작으로 대구 점포 개설에 나선 대기업들은 지역 유통가를 장악했다. 홈플러스에 이어 이마트, 롯데, 이랜드리테일, 현대백화점이 차례로 대구 점포를 개설하거나 인수하면서 지역 대형마트 30개 점포 중 28개가 서울 영토로 변했다. 지난해 말 기준 28개 외지 점포는 모두 3조여원을 거둬 들여 지역 대형마트 매출의 84.5%를 차지했다.
건설-외지 업체들의 잔치판이 되고 있다. 2010년 기준 대구 건설 공사금액(2조6천781억원) 중 토종 업체가 수주한 금액은 전체의 40%(1조700여억원)에 불과한 반면 외지 업체들은 60%에 해당하는 1조6천여억원을 가져갔다.
◆유출
대기업 종속에 따른 지역 자본 유출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매일신문과 대구경북연구원은 국가통계포털에 수록된 2004년 이후 16개 시'도의 예금은행, 비은행금융기관, 생명보험회사 등의 수신 및 여신 총액 자료를 분석해 지자체별 자금 유출액을 산출했다.
조사 결과 2012년 1월 기준 대구 자금 유출률은 27.7%로, 6개 광역시 중 대전(39.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반면 인천은 6개 광역시 중 유일하게 유입이 유출을 초과해 -22.6%의 유출률을 기록했다.
대구의 연도별 누적 유출액은 2004년 10조원에서 2006년 5조9천억원으로 잠시 감소했다가 2008년 14조3천억원, 2009년 15조9천억원, 2010년 20조원으로 다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김용현 연구위원은 "인천의 자금 구조는 아시안게임 유치, 송도 경제자유구역 등 잇단 메가 프로젝트 추진에 따라 유출에서 유입으로 전환된데 반해 대구는 자본 유출로 인한 투자 감소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지역 자금의 유출 경로 및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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