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폭력? 관심이 답이더라!…교내 해법 2題

학교폭력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이 잇따르면서 교육계 전반이 뒤숭숭한 가운데 학생 생활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교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포항 영일고의 특색 프로그램인
학교폭력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이 잇따르면서 교육계 전반이 뒤숭숭한 가운데 학생 생활지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교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포항 영일고의 특색 프로그램인 '1인 1악기' 발표회와 '다도예절 수업' 발표회 모습. 포항 영일고 제공
김전종 교사
김전종 교사
최상하 교사
최상하 교사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중학생이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녀가 혹시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까 노심초사다. 학생 관리가 소홀했다며 비난을 받고 있는 학교 측도 나름 할 말은 있다. 사춘기인 데다 예전과 달리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들을 다루기 쉽지 않을뿐더러 업무가 많아 학생 개개인을 꼼꼼히 챙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학교가 학생 생활지도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생활지도에 열정을 쏟고 있는 대구 서부중학교와 포항 영일고등학교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교사의 관심이 가장 중요…대구 서부중

"교사의 관심만큼 학생은 변합니다."

한 손에 회초리를 든 '학주'(학생주임의 준말)는 학생들에게 보통 두려움과 원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5년째 대구 서부중학교 생활지도부장 역할을 맡고 있는 김전종(39) 교사는 조금 다르다.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일정 수준의 체벌이 필요하다는 이들도 있으나 김 교사는 매를 들지 않는다. 그의 지도 방식은 인내심과 대화.

"학생들이 잘못을 시인할 때까지 끊임없이 얘기를 나눕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니 쉽진 않아요. 하지만 교사가 매를 들면 학생은 그 순간만 모면하려 하지 진짜 반성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반항심만 생깁니다. 아이들은 이미 많이 변해 있는데 교사가 옛 지도방식을 고집하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어요."

서부중 일대는 대구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 이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렵고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이들이 학교폭력 등 문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생활지도도 더 힘겨울 법하지만 김 교사는 그것을 큰 부담으로 생각지 않는다.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이런 아이들은 삐딱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영악하지 않고 순수한 면이 많습니다. 교사가 애정을 보여주면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김정희 교장과 다른 교사들도 김 교사와 뜻을 함께해 생활지도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소한 교육도 반복, 습관화하면 학생들의 생활태도에 변화가 온다는 생각에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이 '1분 생활습관 지도'. 수업시 각 교과 담당교사가 학생들의 복장을 점검하고 주변 정리정돈, 인사 예절 등을 강조한다. 올해 대구시교육청도 이 프로그램을 학교폭력 대처 방안에 포함시켰다. 또 모든 교사가 관심이 필요한 학생을 2명씩 맡아 결연을 하고 상담과 야구, 영화관람 등 문화체험을 함께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2009년부터 특별히 챙길 필요가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친한친구활동'. 이 모임 학생들은 하루에 최소 두 번 김 교사와 만난다. 오전 김 교사와 함께 교문에서 복장 점검 등 학생 생활지도를 하고 오후에는 축구, 농구 등 스포츠 활동을 하기 때문. 교내'외 청소, 양로원 방문 등 봉사활동도 한다.

2009년 당시 학교에서 오토바이 절도, 금품 갈취 등 가장 말썽을 많이 일으켰던 3학년 학생도 이 활동 후 학교생활에 정을 붙이게 됐고 무사히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다만 이 모임이 일진과 비슷한 것처럼 비쳐 다른 학생들에게 또 다른 위협이 될까 김 교사는 모임 학생들에게 수시로 '힘들 때 서로 돕기 위한 모임'임을 강조한다.

"개별적인 문제 행동 때문에 모임에 함께한 다른 친구가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고 타이르죠. 2008년 전체 학생들의 무단결석 일수가 932일이나 됐지만 이 활동을 한 이듬해 151일로 주는 걸 보고 제대로 된 방향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김 교사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서려고 노력해야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생활지도는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밥 먹었니'라며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줘 보세요. 단 몇 초뿐인 행동이라 해도 지속적이기만 하면 아이들이 정을 느끼고 변하게 돼요."

◆학교생활이 즐거우면 생활지도는 저절로…포항 영일고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하는 교장, 한 가지 악기씩은 다룰 줄 아는 학생들, 예절교육과 스포츠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사들, 그래서 학교폭력이 발붙이기 힘든 곳. 현실에서, 그것도 일반계고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포항 영일고의 모습이 그렇다.

최상하(76) 교장의 애장품은 손수 만든 '학생 사진첩'. 거기에는 전교생 810명의 증명사진뿐 아니라 성적, 장래희망, 건강이나 심리적 문제 등 학생들의 개인 정보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최 교장이 학생들을 직접 상담하며 챙긴 내용을 적은 것이라는 점. 4년째 사진첩을 만들고 있다는데 얼마나 자주 들춰봤는지 지난 사진첩마다 손때가 까맣게 묻은 걸 보니 전교생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게 이해가 간다.

"학부모들이 귀한 자녀를 학교에 맡기셨으니 책임감을 갖고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입니다. 쉬는 시간과 점심, 저녁식사 시간 등을 이용해 아이들과 만나 상담한 내용들을 적은 거죠. 지난해 학부모와 전화통화만 300여 통을 했는데 그때 나눈 이야기들도 사진첩 곳곳에 메모해뒀어요."

이뿐 아니다. 영일고 학생들은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모두 소감문을 작성하는데 이렇게 한 해 모이는 소감문은 모두 6천여 편. 최 교장은 밑줄을 그어가며 전교생의 소감문을 모두 읽는다.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해 상담을 할 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교장이 학생 상담에 열을 올리니 다른 교사들도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교사들도 학생들과 소통하는 일에 관심을 쏟게 되면서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뤄지게 됐다. 변두리에 위치한 데다 기존 명문고에 밀려 학생 선호도가 낮은 탓에 행동이나 심성이 거친 학생들이 모여들던 것도 옛이야기가 됐다.

영일고의 가장 큰 목표는 즐거운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학교생활이 즐거우면 학교폭력도 사라지고 공부도 잘된다는 것이 이 학교의 믿음이다.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학부모들을 설득해 1인 1악기 다루기와 스포츠 활동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

영일고는 2004년부터 신입생들이 1년 동안 악기 하나를 익히도록 지도하고 있다. 학생들은 5가지 악기(클라리넷, 플루트, 색소폰, 드럼, 가야금) 중 하나를 골라 매주 2시간씩 배워야 한다. 11월 학부모를 초청, 학급별로 발표회를 가질 때쯤이면 제법 악기를 다루는 게 익숙해진다. 오세훈(1학년) 군은 "악기 연주 덕에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 돈독해져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요즘은 각 학교마다 스포츠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영일고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학급 대항 축구 리그전인 '영일 월드컵'을 진행해왔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시합을 벌이고 1년 동안 전적을 모아 우승팀을 가리고 있다. 여학생들은 발야구 리그전을 치른다.

연간 20시간씩 한복을 입고 다도와 인사 등 생활예절을 익히는 '다도예절 수업'도 영일고의 특색 프로그램. 최정우 교무부장 교사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웃을 일이 많아져야 학교에서의 사건 사고도 줄어든다"며 "학생, 학부모, 학교가 소통하지 않으면 생활지도는 물론 장기적으로 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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