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미래형 인재, 통합교과수업서 나와

하루 종일 수업을 했음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자신들이 바로 수업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몇몇 아이들만 입을 뗐지만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화에 참여했다. 이처럼 논술수업은 아이들에게 능동적인 의사소통을 가르친다. 학교 교육이 논술을 담당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교과통합적인 수업은 서로 성격이 다른 학문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동시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국어와 사회만이 아니라 국어와 역사, 경제와 역사, 철학과 문학, 수학과 물리, 물리와 생물 등 다소 비슷한 교과목 간 소통을 만들어낸다.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문학이 가치를 다루고 자연과학이 사실을 다룬다는 이분법을 넘어 상생의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분명 서로 다른 학문이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그 지점에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런 수업도 시도되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십'이란 공통소재를 택하고 국어, 역사, 수학, 물리 교사가 만났다. 중심 소재는 '이순신'. 국어교사는 소설 '칼의 노래'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분석한다. 역사 교사는 교과서를 토대로 임진왜란 당시의 군사편제, 전쟁의 과정, 국제정세 등을 공부한다. 수학 교사는 학익진의 수학적인 분석과 함께 포물선의 원리를 적용, 함포의 사정거리를 확인한다. 물리 교사는 거북선이란 철갑선 분석을 통해 부력의 원리, 함선(평저선, 첨저선)의 형태를 연구한다.

물론 그러한 모든 과정은 이순신이란 민족 영웅이 지닌 리더십으로 통합되면서 이 시대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확산된다. 소위 인문계와 자연계로 나누어진 아이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한 이런 방식의 탐구에 무척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인문학이 자연과학의 비전 설정에, 자연과학이 인문학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풍경은 상상하기만 해도 즐겁다. 이러한 접속과 횡단은 학문의 세계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엄청난 활기를 부여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지식인들은 사회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쉽게도 학교논술교육은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그 당시 각급 학교에서는 논술을 교과목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유명 출판사에서는 논술 교과서까지 잇달아 개발했다. 논술이라는 과목이 수학능력시험의 한 영역이고 논술의 이론을 배워 그 내용으로 이루어진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이라면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통합교과논술은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수업을 진행하는 방법 그 자체이다.

'드라마에서는 NG가 나면 씩 한 번 웃어주고 다시 찍으면 그만이지만 교육 현장에는 NG가 없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이들을 만나야 하고, 교육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전제 아래 교단에 서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교육은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논술이 사교육 시장의 주범이니, 아이들에게 입시에 대한 부담을 하나 더 늘린다느니, 교사들이 논술 수업을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느니 하는 논쟁은 오히려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이다.

다시 말하지만 통합교과논술은 교과목이 아니다. 그것을 학습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나아가 통합교과논술은 논술 학원이나 독립된 교과를 통해 특정한 형태를 지닌 글쓰기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글은 남의 것을 쓸 수 있겠지만 생각은 남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나누는 풍경이 그립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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