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에서] 서용선 작품세계

휴머니즘에 기반 역사적 비극을 공감화

1951년 서울에서 출생한 서용선은 서울 변두리 미아리와 정릉의 빈민촌에서 살았고, 유년시절 건달들과 어울리면서 방황하기도 하였다. 그에게 미술은 자존적인 삶에 몰두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화과정으로 비유된다.

서용선은 남들보다 4, 5년 늦은 만학도로 서울대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그가 자신의 삶에서 그의 작법으로 추출한 내용은 행복한 삶을 불가능하게 하고 짓누르는 삶의 폭력성 내지는 비극성이었다. 또한 1980년 서울의 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권력투쟁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희생자에 대한 역사와 기억은 그의 창작의지 전반을 가로지르는데,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각종미술상을 수상한 그는, 아카데믹한 회화와 결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역사화는 1970, 80년대 시대상과 마주하여, 군부독재의 비합리적인 권력 쟁취와 그것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모순성을 사유하면서 느낀, 작가의 도덕적인 회의감에서 비롯한다. 그에게 단종폐위와 관련한 세조의 이야기는, 권력쟁취에 대한 명분과 폭압에 대한 당대 사회적 분위기를 비유하는 것이었다. 각 작품은 원색적인 색감과 필치로 화면 가득히 묘사되었고, 역사적 서사와 역사에 얽혀있는 '인간'에 대해 집중된다. 역사화 연작은 계유정난, 단종폐위에서 한민족의 '한'이 서린 한국전쟁시리즈, 상고시대 전쟁 설화 및 신화 등으로 이어진다. 같은 문맥으로 동시대 사회 풍경을 그린 군상시리즈는 뉴욕, 베를린 등 세계의 도시들로 확장되기도 한다.

서용선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련의 기준들은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현실과 시스템의 부속으로 전락한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자성을 의도하는 바다. 그의 작법은 각 서사가 지니는 시간적 층위들을 한 화면에 결합시켜, 역사적 기억을 깨우면서 동시 우리 기저에 있던 집단적 비애감을 자극시킨다. 사회에 대한 도덕적 회의감을 작품의 비애감으로 표출하였던 서용선은 자기초상에 있어 굴욕적으로 엎드린 형상이거나 혹은 비장하거나 몹시 화가 난 듯한 격한 표정을 분출하기도 하였다.

주제에 대한 자료를 체득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는 직접 현장을 답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작업노트는 '그곳'이 함의하고 있는 사연들을 기록하였고, 그로부터 생성된 감정들을 작품화하는 과정이었다. 시대정신은 물론이고, 인간에 관계한 다양한 층위들을 쏟아붓는 서용선에게는 보편적인 도덕에 대한 성찰적 물음이 있고, 휴머니즘에 기반하여 역사적 비극을 공감화하면서 우리의 기억감정을 추출해내는 힘이 있다.

최윤영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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