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습기를 가득 머금은 대기는 비라도 뿌릴 듯 무거워 보였습니다. 하루 사이에 만개한 벚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도 못한 채 배경에 섞여 뿌옇게 흐려 있었습니다. 시간은 다가오는데 구름은 좀처럼 물러설 기미가 없었고, 초등학생들이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로봇이 움직이는 걸 보긴 그른 것 같았습니다. 대책을 고민하다 태양전지 대신 건전지를 임시로 연결해 로봇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몇 년 전 생활과학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과학 만들기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수업을 준비하며 같은 실험을 최소한 두세 번 때로는 열 번 이상 반복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은 적도 있었고, 그것을 아이들과도 공유할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폐품 같은 재료에서 분수가 솟아오르고, 번쩍이고, 소리가 나고, 움직일 때 아이들 얼굴에 번지는 웃음을 보는 순간이 제게는 그 모든 과정의 클라이맥스였습니다.
과학관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그러한 즐거움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체험교실의 내용과 아이들의 반응은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새로이 추가한, 우리가 아직 가르칠 준비가 제대로 안 된 태양광로봇을 학교에서 신청하다니요. 샘플로 달랑 하나 받은 것을 만들어 본 사람은 담당직원 한 명뿐, 날씨는 흐렸고 불안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조립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로봇이 움직이는가를 테스트해 볼 차례였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로봇을 건전지에 갖다 댔습니다. 로봇이 잠시 움직이는 듯하다가 금세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조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만 해볼 뿐 당장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섣부른 실패는 과학이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고 과학과 멀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업 후 직원들과 함께 부품을 뜯어보았습니다. 잠시 후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로봇의 팔에 연결된 관절이 모터의 나사에 걸렸어야 하는데 제자리에 끼워지지 않아 모터의 운동을 방해했던 것이었습니다.
기차가 이미 떠나갔다고 생각한 순간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과학관을 나서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급히 아이들을 붙들어 모아놓고 로봇이 움직이지 않는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아이들이 마치 외계의 언어를 해독하는 듯 뜨악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로봇은 반드시 움직일 거야. 될 때까지 해봐야 해. 에디슨도 같은 실험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알아?"
"……."(사실은 저도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폐품을 이용해 건축물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건물을 만들 적당한 상자를 구하느라 약국에 가서 몇 가지 모양의 약상자를 얻어왔습니다. 그것으로 계단을 만들고, 가로등을 세우고, 오로지 혼자서 궁리하여 만들어 본 상상 속의 집은 조그만 상까지 받는 영광을 주었습니다. 그때의 성취감으로 이과를 선택하고 과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과학 만들기에서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안겨주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취감은 자신감으로 연결되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하려는 의지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간혹 아이들 옆에서 모든 걸 도와주시는 부모님들을 보게 됩니다. 과학 만들기의 목적이 성취감과 호기심이라면 '어른의 역할은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만 도와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이 자주 잊어버리는 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움직이지 않는 로봇에 어른들이 손을 대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가방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랑스러운 로봇을 발견하고 반드시 움직일 거라던, 에디슨도 같은 실험을 아주 많이 반복했다던 누군가의 말을 기억해내고, 스스로 부품을 뜯어 조립해 보고 햇빛 아래서 드디어, 팔다리를 움직이며 아장아장 걸어가는 로봇의 모습을 보는 환희를 맛본다면 말입니다.
온통 잿빛인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서양 속담에 잿빛 구름에도 은색 선이 있다고 했습니다.
백옥경/구미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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