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망탈리테와 멘탈 붕괴

"그런데 와 박근혜는 없노?" "우린 포항 동구에 살아요."

총선이 끝난 뒤 정치권 지인들한테서 들은 우스갯소리들이다. 전자는 대통령 뽑는 선거인 줄 알고 투표하러 갔더니 정작 투표용지에 '박근혜'가 없어 황당했다는 어느 시골 노파의 이야기이다. 물론 실화(實話)였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옛이름으로 선거에 뛰어들었던 '한나라당'이 경북에서 정당투표 전체 4위를 기록한 사실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도 하다.

후자는 포항 출신 인사가 전해준 선거 뒷얘기다. 포항시민들은 "요즘 어디 사시느냐"고 질문을 받으면 지도에 나오지도 않는 '동구'에 산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선거 며칠 전 포항 남'울릉 선거구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와 관련, 성추행 의혹이 대서특필됐지만 무난히 당선된 데 대한 자괴감의 다른 표현이다.

두 이야기는 지나간 총선과 다가올 대선을 바라보는 대구경북민들의 정치적 판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학술적 표현으로 '망탈리테'(mentalites'집단적 무의식)라고 해야 할지, '아비투스'(habitus'습속)라고 불러야 할지는 공부가 짧아 모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란 고유명사는 언젠가부터 TK의 마음속 지도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팩트'다.

철학적 용어가 무엇이든 요즘 대구경북민들이 '멘탈 붕괴'를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거액의 금품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TK 출신 고위 인사들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각각 '방통대군'과 '왕차관'으로 불렸던 이들은 현 정부 최고 실세였다. 또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불렸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마저 지역 출신 다른 인사들과 함께 의혹대상자로 거론되고 있어 고향 까마귀들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정권 말기면 어김없이 출현하는 게 권력형 비리라곤 하지만 사태를 지켜보는 대구경북민들로서는 착잡하기만 하다. 정권 내내 '고소영' '영포라인' 의혹이 일 때마다 설마 하면서 믿어줬고, '정권 흔들기'라며 애써 무시해온 터인 까닭이다. 이들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역민들은 또 한 번 비판의 대상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총선 27대0'에 대한 폄훼도 한몫할 것이다.

솔직히 대구경북에 '끼리끼리 문화'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출향인사들마저 이 같은 폐쇄성을 '계(契) 단위 정서'라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이 같은 '업보'가 다음 정권에서도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데 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헌신과 투혼으로 총선 완승을 거둔 뒤 '대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런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영남권 친박 내부의 권력투쟁설이다. 급기야 박 위원장 스스로도 "자멸 행위"라며 잇따라 경고를 날리고 있는 상황이다.

박 위원장에 대한 지역민들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야권에서 불거진 '단합-담합 논란'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 출신 인사들이 측근을 자임하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한다거나, 그런 세력에 편승하길 바라는 승냥이 무리가 나타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가뜩이나 '대구경북에는 부동표(浮動票)는 없고 부동표(不動票)만 있다'는 비아냥을 들어온 게 지역의 현실 아닌가. 혹여 7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 기간 중에 과거의 악습이 재연된다면 그것은 분명 폭풍을 부르는 천둥소리가 될 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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