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명(가명'41) 씨에게는 휴일이 없다. 대구 동구 율하동 집에서 매일 경북대병원을 오간다.
임 씨는 '만성신부전증' 환자다. 집에 무균실을 만들면 먼 길을 가지 않고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럴 형편이 안 돼 4년째 병원을 오가고 있다.
임 씨는 자신을 떠난 아내와 가난, 그리고 병마까지 찾아오면서 생을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삶의 의지를 버릴 수 없는 것은 항상 아버지를 응원하는 외아들 성민(가명'17)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건강을 잃다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중구 삼덕동 경북대병원 7층. 배에 관을 꽂고 복막 투석을 하는 임 씨가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임 씨는 인터뷰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병에 걸리면서 이가 다 빠졌어요. 보세요. 이가 10개도 안 남아 밥을 제대로 못 먹어요." 임 씨가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것은 2009년 8월.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던 임 씨에게 건강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받았다.
"그날도 집에서 아침을 먹고 일하러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토하고 쓰러졌어요."
의식을 잃은 임 씨는 3일간 깨어나지 못했다. 그가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몸은 예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양쪽 신장이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내렸다.
임 씨는 건강보다 아내를 먼저 잃었다. 20년 전 대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 아내를 만난 그는 소박하나마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그의 식당도 위기를 맞이했다. 인근 공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월 식사를 제공하며 돈을 벌었던 임 씨는 공장이 하나둘씩 망하면서 외상값을 떼이고 고객들을 잃었다.
"전세금 1천만원까지 빼서 식당을 살려보려고 했지만 결국 안 되더라고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니 아내가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더군요."
식당을 접고 채 1년이 안 돼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다. 임 씨 곁에 남겨진 것은 수천만원의 빚과 생후 8개월 된 아들뿐이었다.
◆뇌졸중 아버지까지 돌봐야
임 씨는 아들에게 엄마의 존재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버리고 떠난 무정한 모정을 성민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애가 어릴 때 엄마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죽었으니 이제 볼 수 없다'고 말했지요.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지만 그래도 애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2009년 그가 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막노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존재가 드러났다. 성민이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여태껏 죽었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충격에 휩싸였고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알려주려고 했는데 결국 내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아들한테 큰 상처를 주고 말았어요."
임 씨는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처지에서 아버지(66'언어장애 3급)까지 돌보고 있다. 임 씨의 아버지는 13년 전 아파트 경비 일을 하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지적 능력도 떨어졌다.
임 씨는 매일같이 병원에서 복막 투석을 하면서 점심때는 아버지 식사를 챙겨주러 집으로 돌아간다.
◆신장 이식만이 살길
임 씨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면 아들을 생각한다. 힘든 형편에도 방황하지 않고 착실하게 자라준 성민이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성민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서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자 임 씨는 "집 걱정은 하지 말고 기숙사로 가라"며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성민이는 집에서 용돈을 거의 받지 않는다. 주말마다 숯불구이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벌어 쓴다.
임 씨는 2년 전 신장 이식을 받기 위해 등록을 해 둔 상태지만 수술비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의료 보호 1종 적용을 받는다고 해도 이식 비용이 1천만원 이상 들기 때문이다.
임 씨의 소득은 생계급여 75만원과 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장애연금 15만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병원비와 영구임대아파트 관리비, 성민이의 기숙사비와 급식비까지 내고 나면 매달 적자가 난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가야만 우리 성민이가 이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잖아요." 임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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