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은 왕실이 선택한 명당의 고장이다. 세종대왕은 아들과 손자의 태(胎)를 성주에 묻었다. 전국의 많은 명당 가운데 성주를 택했다. 성주의 좋은 기운을 받아 왕실이 번창하길 바랐다. 명당의 고장답게 성주는 낙동강과 그 지류인 백천, 이천, 대가천 등을 따라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퇴계학과 남명학 모두에 밝았던 한강 정구, 조선의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등이 성주에서 태어나 학문을 다졌다. 성주군은 '참외의 고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려 한다. 태실과 낙동강, 명당인 자연환경을 발판 삼아 생명문화와 생태환경이 어우러진 '무릉도원' 관광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세종, 왕실 번영의 '씨앗'을 묻다
성주는 조선 왕실의 태를 묻은 땅이다. 선남면 선원리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백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월항면 인촌리)이 있다. 이곳엔 세종의 왕자 태실 18기와 단종이 원손(元孫)으로 있을 때 만든 태실 석물 1기가 있다. 왕실은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에 안치하는데 이를 태실(胎室)이라 한다.
태는 출산과 함께 산모 몸 밖으로 나오는데, 남자의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총명해 학문을 좋아하고 병이 없이 자란다고 믿었다. 태에 좋은 땅이란 자궁 모양처럼 산이 감싸 안는 지형 가운데 반듯하게 솟아오른 곳을 말한다.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듯 명당에 왕실 번영의 씨앗을 심는다는 의미를 지녔다.
태실은 정치적으로 하나의 통치 장치이기도 했다. 왕릉이 도읍지 100리(약 40㎞) 안팎에 위치한 데 반해 태실은 전국 도처에 조성됐다. 이는 백성과 유대감을 높여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명당을 왕실이 선점함으로써 장차 왕권에 위협이 될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실제 성주는 고려 때 충신 집안인 성주 이씨의 본거지였다. 왕조의 기반을 다지던 조선 초기에 세종은 왕실에 대한 도전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던 것.
태실에는 슬픈 왕조의 이야기도 있다.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양위에 오르면서 동생들인 안평대군, 금성대군,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의 태실과 태실비를 훼손해 산 아래에 버려 현재는 기단석만 남아있다.
곽명창 문화해설사는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지켜봤기에 자식들 간의 우애를 바라는 심정으로 태를 모두 성주에 모았을 것이다"며 "하지만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실에 피바람이 몰아쳤다. 명당을 찾아 태를 안치했지만 역사의 비극은 피해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명당 성주가 낳은 인물들
왕실이 인정한 명당의 땅 성주는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한강 정구는 성주를 대표하는 학자다. 한강은 21세에 퇴계의 문하에 들어갔고 24세 땐 남명의 제자가 됐다. 영남의 양대 학파인 이황의 퇴계학과 조식의 남명학 모두 받아들였다. 낙동강 북부의 퇴계학을 낙동강 중류에 널리 알렸고, 경남 합천의 남명에게 배운 남명학을 성주에 뿌리내리게 했다.
한강의 흔적은 회연서원(수륜면 신정리)에 남아있다.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한강은 대가천 곳곳의 기암절벽 등 멋진 풍경을 시에 담았다. 박재관 성주군 학예연구사는 "한강은 중국 송나라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 '무흘구곡'이라 불렀다"며 "서원의 뒤편 절벽인 봉비암(제1곡)에서 시작돼 제2곡 한강대, 제3곡 배바위, 제4곡 선바위, 제5곡 사인암이 성주에 소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주의 대표 인물로 심산 김창숙을 빼놓을 수 없다. 1909년 심산은 지금의 청천서당(대가면 칠봉리)에 성명학교를 세운 뒤 인재를 키웠다. 1919년엔 프랑스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탄원서를 보냈다가 발각돼 체포됐다. 심산은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광복 후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
성산 이씨 집성촌인 한개마을(월항면 대산리) 역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이곳 출신인 돈재 이석문은 사도세자의 호위 무관이었다. 세자가 뒤주에 갇혀 숨을 거둔 후 평생을 숨어 지내며 충절을 다했다. 이외에도 대사간,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 이원조(1792∼1872)와 운요호사건(1875년) 때 의병을 일으키려 한 한주 이진상(1818~1886) 등이 한개가 낳은 사람들이다.
◆낙동강 무릉도원을 꿈꾸며
태실과 인물의 고장 성주는 낙동강을 바탕으로 생태환경과 생명문화가 어우러진 관광자원 개발에 나섰다. 성주군은 지난해부터 태실문화를 축제로 승화한 생명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서울 경복궁에서 출정식을 열고 광화문에서 청계천까지 태 봉안 퍼레이드를 펼친다. 성주 태실에선 태 봉안의식을 재현해 시민들에게 선보인다.
성주군은 세종대왕자태실과 태실 수호 사찰인 선석사 등 월항면 인촌리 일대에 114억원을 들여 올해 말까지 생명문화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곳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생명문화관을 세운다. 문화관은 태실의 역사와 분포, 아기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선보인다. 이외에도 생명문화광장, 연꽃원, 산책로와 탐방로 등이 들어선다.
김창수 성주군 문화체육과장은 "태 봉안의식은 유교 문화권 중에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의례로 조선 왕실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며 "태 봉안의식과 생명문화공원을 통해 생명존중의 문화를 확산할 수 있고 나아가 '태실의 고장 성주'라는 브랜드를 전국에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성주 낙동강 주변에는 특색 있는 관광자원이 부족하다. 이에 성주군은 2020년까지 1천500억원을 들여 선남면과 용암면 일대에 '낙동강 무릉도원 테마파크'(250만㎡)를 세울 계획이다. 이곳은 동안진 나루터, 물자를 보관한 '동안창'(東岸倉), 숙소인 '동안원'(東岸院) 등이 있었던 역사를 담고 있다. 또 강 유역 10㎞ 이내에 다양한 역사문화유적이 분포해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낙동강 본류와 2개 지류(백천, 신천)가 만나는 곳이어서 강변을 따라 갈대숲과 습지가 형성돼 있다.
무릉도원 테마파크의 무릉도원 지구에 낙동강 오리알 상생'평화공원, 무릉도원촌이 조성된다. 강나루문화 지구에는 낙동강 지역 고유의 문화를 재현한 가죽정 강촌마을, 나루터, 민화마을, 강변탐방로가 들어선다.
송재일 대구경북연구원 지역관광팀장은 "지역의 관광자원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관뿐만 아니라 학계, 기업 등 민간 부문의 참여가 중요하다"며 "민간이 참여함으로써 전시적인 요소를 줄이고 지역 산업과 연계해 경제성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장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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