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곳에 가면 네 '마음의 그림자' 있다

갤러리 분도 기획 '정병국 전'

공고할 것만 같은 시간에도 틈새는 있다. 낮과 밤의 경계, 그 시적이고 은유를 품은 시간의 빛깔은 짙은 푸른색이다. 이 심연의 푸름은 지나간 시간과 예정된 미래 사이에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정병국의 그림에는 그 심오한 푸른색이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영화 스크린처럼 크게 펼쳐진 대형 캔버스 위에 깊은 푸른 기운이 흐르고, 그 위로 사람의 이미지가 언뜻 비친다.

한 대형 작품은 오로지 푸른색만이 미묘한 변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 푸른색을 스스로 '기억의 저장소'라고 부른다. 정병국 작품 속 사람은 정면을 보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주로 뒷모습을 보여주거나, 상처받은 알몸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 뒷모습의 주인공이 실제로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표정을 숨기는 현대인의 쓸쓸하고 고독한 뒷모습이다.

전시장에서 300호 규모의 큰 그림을 거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작가를 만났다.

"기억 속의 이미지를 끌어내다 보니, 주로 푸른색을 쓰게 되지요. 푸른색을 캔버스 위에 칠하다 보면 만족감이 들어요. 사람의 뒷모습을 그리는 이유는, 앞모습을 그리면 얼굴에만 집중하게 돼요. 저는 뒷모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로 대작을 그려왔다. 스크린에 떠오르는 영화 이미지를 염두에 뒀다. "시대를 역행하는 무모함이랄까요. 요즘 그림이 워낙 장식적이니, 그렇지 않은 그림도 필요하잖아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짙은 그림자'. 그림에 묘사된 신체의 그림자라기보다, 정신적인 그림자에 가깝다. 작가는 "그림자는 존재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형상인 회화를 가리킨다"고 밝혔다. 그림자는 그리움에 관한 작가의 해석이기도 하다.

윤규홍 아트디렉터는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커다란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드넓고도 무심한 우주 공간, 바다의 심연, 불모의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듯한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갤러리 분도가 야심 차게 기획한 이번 전시는 13일까지 봉산문화회관(053-661-3081)에서, 그리고 26일까지 갤러리 분도(053-426-5615)에서 열린다.

우리는 정병국의 그림 앞에서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심오하고 쓸쓸한 푸른색을 배경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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