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족은 사랑이다] "전통옹기 가업, 7대째 자연스럽게 계승"

4대가 한지붕

가족은 세상을 밝혀주는 등대이며, 소용돌이치는 고난을 막아 낼 갑옷이다. 그렇기에 가족의 사랑만 있다면 세상에서 어떠한 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 행복한 가족의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일상을 함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통옹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정대희(55·상주시 이안면 흑암리) 씨 가족은 4대가 함께 살고 있다. 정학봉(83·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옹기장-정대희(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전수교육 보조자) 씨-정창준(32·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전수 장학생) 씨-정웅혁(12)·일혁(7) 군 등 8명이 한 집에 산다.

이 가족은 7대째 우리나라 전통옹기 만들기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대희 씨는 4남 3녀 중 넷째(셋째 아들)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가업을 잇고 있다. 철들기 전부터 옹기를 굽는 아버지를 따라 흙을 만지고 놀면서 자연스레 옹기장이의 길로 들어섰다. "공부는 몰라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흙으로 무엇을 만드는 일은 나를 따라올 학생이 없었어"라고 자랑한다.

전통 옹기장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운명처럼 그 길을 걷고 있다. 4대가 함께 사는 정 씨 가족은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대를 이어 옹기장을 하면서 함께 사는 일은 자연스럽다. 정 씨의 집은 옹기장의 집답게 넓은 마당이 옹기로 뒤덮여 있다. 정 씨의 부인 김영란(53) 씨는 이 옹기에 전통 된장 200여 개를 담근 된장 전문가다. 시어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온 며느리 김지연(32) 씨에게 된장 만들기를 가르치고 있다. 자연스런 대물림이다.

정대희 씨는 "나는 아버지한테 옹기 만드는 기술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그냥 내가 알아서 이것저것 만들어 보면서 기술을 깨달았을 뿐이야. 그러다 보니까 창작도 되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오르게 된 것"이라고 밝힌다. 이런 전통은 아들 창준 씨도 마찬가지다. 창준 씨는 "저도 처음부터 옹기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며 "나중에 철들어 집안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랬듯이 창준 씨도 "아버지는 옹기가마에 불을 땔 때 '불을 잘 살피라'고만 말씀하실 뿐 모든 것은 스스로 다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손자들은 어린 나이에도 벌써 옹기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 흙 만지기를 좋아하는 웅혁 군은 외모와 말하는 폼이 모두 할아버지를 꼭 빼닮았다. 벌써 고교 진학은 여주 도예고교로 정해 둔 상태다. 동생 일혁 군은 "나는 커서 큰 독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손자들의 말에 할아버지 정 씨는 연신 흐뭇한 표정이다.

하지만 정 씨는 요즘 고민이 있다. "전국 대학에 옹기를 전공하는 전문과목 하나 개설한 곳이 없어 앞으로 옹기를 만들 사람이 없을까 걱정이다"며 "전통옹기를 계승하려면 '옹기학교' 등 전문학교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나는 이제 아무런 바람이 없다. 내가 할 일을 다 한 셈이지. 손자까지 가업을 잇겠다고 했으니 더 바랄 것이 있겠느냐?"고 한다. "가족의 행복도 마찬가지야. 옹기를 굽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불을 잘 지피는 게 중요하듯, 가족의 경우도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사랑과 예와 도를 전승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가족 행복론을 강조한다. 4대가 함께 사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만 이들 가족은 '옹기장이의 가업을 잇는 일은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가족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예절과 세상살이를 배운다.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w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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