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스테이지 쿼터(stage quota)

한국 창작물 보호'육성 위해 논의…관객의 관심도 중요

자국의 영화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 일수 이상 자국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스크린 쿼터'(screen quota)라는 제도가 있다. 한마디로 '자국 영화 의무 상영 제도'인 스크린 쿼터는 우리나라 외에는 프랑스가 그 대표적 시행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그 제도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자국 영화 시장을 비교적 잘 지켜내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의무 상영 일수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으며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때문에 스크린 쿼터는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대체 어느 선이 적정한 것이라고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는 분명히 스크린 쿼터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해낸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스크린 쿼터는 한국영화를 질적으로 혹은 양적으로 성장시키며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켜내는 데 큰 몫을 해냈다. 비록 할리우드 영화의 상업성에 버금가는 일부 상업영화의 독과점으로 인해 저예산 영화를 비롯한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폐해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스크린 쿼터는 한국영화가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만은 확실하다.

'스테이지 쿼터'(stage quota)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의 스크린 쿼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겨난 개념이다. 스테이지 쿼터는 공연예술계에서 외국공연으로부터 한국의 창작공연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등장한 것이다. 특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분야는 뮤지컬 시장이다. 아직까지 외국의 연극이 국내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많은 관객을 확보할 만큼 연극 산업이 성장하지는 않았으나 뮤지컬 산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로 시장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극장 뮤지컬이라고 하는 소형 뮤지컬은 나름 선전하며 시장성을 확보, 자생력을 키워가고 있지만 대극장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 뮤지컬은 외국의 뮤지컬에 밀려 아직까지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유명한 스타 뮤지컬 배우들도 한국의 대형 뮤지컬보다는 외국의 라이선스 뮤지컬에 주로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어느 시상식에서 한국 뮤지컬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한 작가의 수상소감이 경종으로 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테이지 쿼터를 시행하는 것이 꼭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제도든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니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구체적인 제도의 차이점이나 시행 여부를 떠나서 스크린 쿼터와 스테이지 쿼터는 모두 외국과 우리문화의 균형발전과 우리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생겨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도 문화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관련 제도를 만들거나 수정해서 우리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할까. 영화를 보고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을 보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주어진 역할이 없을까? 이는 깊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관객은 최대한 싼 가격에 훌륭한 공연을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소셜커머스를 이용한 반값 티켓과 각종 할인 이벤트에 관객들은 적극 참여하며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비싼 티켓 가격을 자랑하는 외국의 대형 오리지널 공연이나 대형 라이선스 공연에는 티켓가격에 비교적 후한 인심을 보이곤 한다. 심지어 한국의 창작공연에 비해 10배 수준까지 티켓 가격이 차이가 나도 당연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 공연의 수준이 꼭 티켓 가격과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외국의 오리지널 뮤지컬은 창작 뮤지컬과 비교하면 작품 수준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관객은 당연히 수준 높은 공연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 뒤에 어떤 결과가 오게 될까? 더 이상 우리 창작공연은 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해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 쿼터'라는 제도도 있었지만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선택해 준 관객의 역할이 컸다. 그로 인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품 수준으로 성장했듯이 공연예술도 지키고 사랑해주면 실력이나 수준은 급성장할 것이다.

이제 영화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의 창작공연에도 관객의 마음을 일정 부분 나눠주는 '마인드 쿼터'를 관객 스스로 시행해 볼 것을 권한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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