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 /이병훈 /한길사

백야의 도시, 뻬쩨르부르그 예술기행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뻬쩨르부르그는 백야의 도시다. 뿌쉬낀, 고골, 도스또예프스끼가 살았으며 그들의 주요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이기도 하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이병훈이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에 이어 펴낸 러시아 예술기행 두 번째 권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를 읽었다.

저자에 따르면 뻬쩨르부르그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화려하고 웅장한 귀족적 도시의 면모와, 자유와 민중을 억압한 전제적 도시의 일면이다. 황제들이 살았던 궁전의 호사스러움과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황금으로 수놓은 화려한 비단옷, 희귀한 대리석으로 꾸민 신비로운 실내장식, 수많은 조각으로 치장한 건물의 웅장함….

이런 모습만 보면 뻬쩨르부르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저자는 뻬쩨르부르그의 화려함 뒤에는 러시아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말한다. 민중들의 비참한 삶과 노동, 자유를 동경했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고난, 테러와 암살, 혁명과 반혁명, 전쟁과 파괴 등은 뻬쩨르부르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낳았다. 고골은 뻬쩨르부르그를 관료제도가 지배하는 유령의 도시로 그렸고, 도스또예프스끼는 심지어 반미치광이들의 도시라고 했다.

뻬쩨르부르그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 뾰뜨르 대제에 의해 건설된 철저한 계획도시였다. 제까브리스뜨 광장에는 뻬쩨르부르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뾰뜨르 대제의 청동기마상이 있다.

청동기마상은 러시아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작품이 뿌쉬낀의 서사시 '청동의 기사'다. 청동기마상은 위대한 인물과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지만 뿌쉬낀은 그로 인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 소시민의 불행에 대해 노래한다. 절대 권력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진실을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바강 왼쪽 구해군성 건물의 서쪽 입구에는 제까브리스뜨 광장이 있다. 1825년에 일어났던 제까브리스뜨 혁명을 기념하는 곳이다. 귀족 출신의 젊은 엘리트 장교들이 농노제 폐지와 전제군주에 대한 견제를 주장하며 봉기를 일으켰다. 혁명은 좌절되었고 주모자들은 모두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거나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은 네바강변에 부서지는 포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제까브리스뜨들의 영혼은 살아남아 뿌쉬낀과 쭈쩨프의 시로 다시 태어났고,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로 환생했다. 19세기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제까브리스뜨를 통해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인식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겨울궁전이 에르미따쥐박물관으로 된 것은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였다. 이 박물관에는 렘브란트, 루벤스 컬렉션과 고흐, 세잔, 마티스, 피카소 등 세계적인 화가의 귀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뻬쩨르부르그는 고골의 작품에 나오는 지명인 네프스끼대로를 중심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이 대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시박물관이다. 저자는 네프스끼대로를 걸으며 이 거리에서 위험한 환상을 꿈꾸지 말라고 경고한 고골과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을 만난다. 뻬쩨르부르그에 있는 많은 문학박물관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도스또예프스끼박물관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으며, 부르주아 계급의 타락과 물질만능이 서구 자본주의 세계를 몰락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던 반(反)자본주의자였고, 사회주의의 교만함과 전체주의적 함정을 경고했던 반사회주의자였으며, 나라의 기둥이 될 사람은 반드시 모국어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슬라브주의자였던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작가의 감회는 남다르다.

네바강에서 유래된 아름다운 운하와 다리가 많아 북방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는 뻬쩨르부르그 근교에는 황제와 대귀족들의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이 많아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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