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과 9일은 고향 장날이다. 고향 장에는 봄이면 남새밭에서 갓 나온 푸새들이 입맛을 돋우고, 가을이면 호박오가리, 무말랭이와 고추튀각 그리고 찐쌀까지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느낌이다. 고향 장터를 찾아갈 때마다 태어났던 강을 죽을 때 찾아가는 연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촌로들에게 "장에 나오셨습니까?" 하고 머리 숙여 인사라도 하고 싶고 어디 주막으로 모셔가 막걸리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다.
어물전 맨 끝 집 돔배기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로 간다. "어르신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대충 인사를 나누고 영감님이 이것저것 골라준 것들을 사들고 돌아선다. 돔배기 중에서도 '양제기'라고 부르는 귀상어 고기가 색깔은 좀 검어도 맛은 일품이다. 운 좋게 '양제기'의 뱃살 부분을 헐값에 사는 날은 그야말로 횡재한 기분이다.
이렇게 장터를 한 바퀴 돌면 한두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고향 장터에 오면 으레 들러 요기를 하는 곰국집이 저만치 기다리고 있다. 할매곰국집. 허리를 90도쯤 숙여 들어가면 땟국이 자르르 흐르는 기역자 목판이 펼쳐져 있다. 나같이 키 큰 사람이 키대로 일어서다가 양철 천장을 받기라도 한다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을음이 한 움큼 떨어질 판이다.
그런 곰국집 목판 앞에 앉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몸이 너무 뚱뚱하여 엉덩이를 밀면서 걷는 할매가 퍼주는 뚝배기 속엔 그리운 옛날이 국물이 되어 넘실거린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중학교 입시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대구라는 도시에 나가 보았다. 그날 농사일을 잠시 덮어두고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어머니도 함께 따라나섰다. 시험을 마치고 방천 둑길을 따라오다가 어머니는 방천시장 안의 곰국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모자가 달랑 곰국 한 그릇만 시켰다. 어머니는 곰국 그릇을 내 앞으로 밀쳐 주셨고 당신은 맨밥 몇 술을 뜨다 말고 숟가락을 놓았다. 답안도 잘 못 쓴 주제에 밥맛이 있을 리 없었다. 곰국집 주인은 곰국 국물에 밥을 한 술 더 말아 어머니에게 내밀며 "효자 났구마"라는 말로 어머니의 가난을 위로해 주었다.
나는 가난이 싫었다. 돈이 없으면 차라리 굶을 일이지 둘이서 밥 한 그릇만 시키는 궁상도 싫었고, 국물에 밥을 말아 주는 곰국집 주인의 호의도 싫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중학교 진학도 싫었고 도시도 싫었고 곰국도 싫었다. 모두가 싫었다. 죽고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방천시장에서 곰국을 먹고 온 다음 날 나는 심한 설사를 했다. 시험을 잘 못 치른 불안감과 달랑 1인분만 시킨 남루, 그리고 자존심의 훼손 등이 복합적 배탈을 일으킨 것 같았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쇠고기 곰국은 먹지 않았다. 곰국 생각만 해도 괜히 토할 것 같은 현기증이 일었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했다. 언론계는 별로 생산적이진 못해도 먹고 마시는 것 하나는 여느 직업보다 푸근한 동네다. 동료들과 어울려 도가니탕이니 꼬리곰탕이니 우랑탕집 등을 다니다 보니 그게 모두 곰국의 변형이었다. 진저리나게 싫었던 곰국 집을 제 발로 찾아다니는 꼴이 됐다.
그쯤 되고 보니 옛날 1인분을 시켜 기역자 목판 앞에서 쪼그리고 먹던 그 곰국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차일을 치고 목판을 벌여 놓은 곰국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골로 나가는 길에 장터 풍경이 보이기만 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옛일. 시골 장터의 목판 곰국집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어머니와 함께 장터 곰국집에 가보고 싶다. 그날 방천시장에서의 누추한 궁상을 이야기하면서 눈물 한 줄기 흘리고 싶다. 그러나 어머니는 산으로 올라가신 후 아무 소식이 없다. 뙤약볕 여름이 오기 전에 어머니의 묘소에 가 '곰국 한 그릇' 얘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겨 드려야겠다. 그런데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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