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大幹 숨을 고르다-황악] (19)우두령∼화주봉∼삼도봉

봄빛 완연한 우두령, 화주봉서 철쭉향연, 산도봉엔 상생 기운

삼막골재에서 삼도봉 급경사 구간에 설치된 나무계단은 오르내리기가 힘이 든다. 백두대간 해발 1,000m 이상 되는 산에는 아직 봄이 찾아들지 않고 있다.
삼막골재에서 삼도봉 급경사 구간에 설치된 나무계단은 오르내리기가 힘이 든다. 백두대간 해발 1,000m 이상 되는 산에는 아직 봄이 찾아들지 않고 있다.
◆삼도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김천시 부항면 일대. 삼도봉에서 발원한 부항천 끝자락에는 댐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부터 부항댐에 담수를 시작하면 물줄기 대부분이 잠기게 된다. 삼도봉의 8부 능선까지 연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으나 정상에는 아직 봄이 찾아들지 않고 있다
◆삼도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김천시 부항면 일대. 삼도봉에서 발원한 부항천 끝자락에는 댐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부터 부항댐에 담수를 시작하면 물줄기 대부분이 잠기게 된다. 삼도봉의 8부 능선까지 연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으나 정상에는 아직 봄이 찾아들지 않고 있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네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가수 양희은이 불렀던 '한계령'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시인 정덕수의 글에 하덕규가 곡을 썼다. 산에 오를 때면 이 노래가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절로 흥얼거린다. 아마 힘겨웠던 1970'80년대를 함께 경험했기 때문일런가. 귀에 익은 멜로디와 노랫말이 아련하고도 정겹게 다가오는 듯하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을 맞아 다시 산에 오른다. 겨우내 북풍한설과 혹한에 시달린 산들이 새 생명인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고 봄 단장에 여념이 없다.

◆5月! 다시 산에 오른다

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고 있다. 백두대간 우두령(질매재)에서 화합의 산으로 이름난 삼도봉(三道峯)을 오르기로 했다. 황악산 이야기를 시작했던 지난 1월 중순 정상인 비로봉을 오르기 위해 이곳 질매재를 찾았었다. 이번에는 반대편인 지리산 쪽 백두대간 삼도봉을 오른다. 당시에는 영하 15℃를 넘는 혹한에다 내린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영상 20도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등산하기에 제격인 정말 좋은 날씨다,

질매재에서 차를 내려 본격 등산로로 접어든다. 등산로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수줍게 핀 진달래가 산꾼들을 반긴다. 산 아래는 이미 진달래가 모습을 감추었는데 비교적 고지인 이곳은 이제야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200여m를 올랐을까. 진달래꽃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소나무 가지가 많이 부려져 있다. 마치 아래에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 듯 그냥 아무렇게나 꺾여져 있고 몸에는 생채기가 선명하다. 지난겨울에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들이 부러졌다는 설명이다. 아직도 백두대간 황악산 정상에는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꽃 터널을 지나자 양지바른 산기슭에 노란제비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다. 쾌적한 날씨에다 맑은 공기, 그리고 봄꽃의 향연으로 눈이 호사를 한다. 40~50여 분을 오르자 헬기장이다. 주변 햇볕이 잘 드는 곳의 낙엽송에도 연둣빛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그러나 헬기장을 지나자 이곳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로 벌거벗은 모습이다. 해발 900m인 높은 산에는 아직도 봄이 요원하다. 가끔 적막을 깨우는 새소리만이 정겹게 들릴 정도다. 며칠 전 내린 봄비가 촉촉하게 길을 적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봄철이면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화주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 한참을 가자 석교산(1,207m) 표석이 산꾼을 기다린다. 석교산은 화주봉(花朱峯)으로도 불린다. 김천 구성면 마산리, 부항면 안간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상 부근에는 철쭉(연달래)꽃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꽃밭 주절산' 또는 '꽃밭 주절이' 등으로 부른다. '화주봉'은 '철쭉꽃이 붉게 피는 산'이란 뜻이 담겨 있다. 해마다 산정(山頂)에 드넓게 펼쳐지는 철쭉을 감상하기 위해 상춘객과 산꾼이 몰려드는 숨은 비경이다. 그러나 아직은 철쭉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꽃 천지라 불린 아름다움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한 달가량은 더 지나야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화주봉을 지나자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내리막이 끝나면 오르막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산길을 오르자 이번에는 암벽이 마주한다. 올려다보니 100여m 정도쯤 될까. 등산로에 매여 있는 밧줄에 의지해 산을 오른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있다. 암벽을 오르자 주변이 탁 트인 신천지다. 가슴까지 시원하다. 백두에서 달려온 마루금이 줄지어 남으로 남으로 치닫고 있다. 준비해 간 지도를 보니 높이가 1,172m다. 그런데 웬걸 봉우리 이름이 표시돼 있지 않다. 산 아래를 굽어보자 산골짜기에 옹기종기 집 몇 채가 정겹게 자리한 마을이 보인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부항면 대야리 속칭 양지뜸과 숲실마을이 이웃하고 있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골바람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친다.

능선을 따라 길을 재촉하니 폐광지역 경고판이 생뚱맞게 길손을 맞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군데군데 폭탄을 맞은 듯 움푹움푹하게 패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김천, 특히 부항면 대야리 주변에는 금광 개발 붐이 일었단다. 많은 일본인 채굴업자와 기술자'탄광 인부들이 몰려들어 이곳이 도회지처럼 흥청거렸다고 한다. 경찰주재소까지 마을에 생길 정도였다. 광복을 맞아 일본인들이 떠나고 금맥이 줄어들면서 마을은 평온을 되찾았으나 산자락 곳곳에 흉터처럼 금광굴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칫, 폐광지역을 알리는 경고판이 없었다면 무너진 갱도로 실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길의 흔적조차 사라진 밀목령과 삼막골재

폐광지역을 지나 오르내리기를 몇 차례 하면 헬기장에 다다른다. 길옆으로 다래 넝쿨이 지천이다. 아직은 잎이 나지 않아 길손의 발걸음을 잡지 못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약초꾼들이 몰려 들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4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얕은 구릉지가 나온다. 밀목령(密木嶺), 밀목재로도 불린다. 부항면 대야리와 영동군 상촌면을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만 전할 뿐 길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 일대는 예전에 나무가 울창해 빽빽할 밀(密), 나무 목(木)을 따서 '밀목령'으로 불렸다. 밀목령과 연결되는 곳이 삼막골재이다. 삼막골은 부항면 해인리 서북쪽 골짜기다. 예전에는 이곳을 통해 영동군 상촌면 마나미골로 넘나들었다. 삼막골도 '나무가 우거져 장막을 쳐 놓은 듯'해 이름을 얻었으나 지금은 주변에 울창한 숲은 볼 수 없다. 정상에는 영동군에서 쉼터를 조성하고 간단한 운동기구까지 설치해 뒀다. 그런데 이곳까지 올라와 운동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의를 위해 설치한 시설이 오히려 '옥에 티'다.

◆화합의 상징인 삼도봉

삼막골재를 지나면 곧바로 가파르게 설치된 나무 계단을 만난다. 한나절을 걸어 지친 몸으로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곧이어 삼도봉(三道峯)이 위용을 드러낸다. 삼도봉은 높이가 1,176m이다.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삼도봉'으로 불린다.

정상에는 세 마리 거북이 등 위에 큰 여의주를 머리에 인 세 마리 용이 세 방향으로 산 아래를 굽어보는 형상을 한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1990년 김천(당시 금릉군), 영동, 무주군 등 3도의 문화원이 삼도 화합의 상징으로 세운 탑이다. 매년 10월 10일 정오(正午)에 김천시, 영동'무주군 등 3도(道)민들이 이곳에서 23년째 만남의 날 행사를 갖고 친목과 화합을 다져오고 있다.

삼도봉은 '조선 태종 때(1414년) 조선을 8도로 나누면서 이 봉우리를 기준으로 경상'충청'전라 3도로 나눴다고 해 '삼도봉'으로 이름 붙여졌다. 삼도봉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지금까지 걸어왔던 황악산, 북으로는 석기봉'민주지산으로 마루금이 달리고, 남으로는 대덕산'지리산으로 산봉우리가 수평선처럼 줄지어 늘어서 있다. 산 아래를 굽어보니 아직 봄이 8부 능선에 머물고 있다. 연초록빛의 물결이 산 위로 슬금슬금 오르지만 아직은 정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달 중순쯤이면 1,000m 넘는 이곳 백두대간에서도 봄꽃의 향연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작가 texcafe@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